“저궤도위성으로 끊김 최소화”…스타링크, 한국 상륙에 통신지형 흔든다
저궤도 위성통신이 국내 상용 서비스 단계로 진입하면서 이동통신 중심이던 통신 인프라 지형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가 4일부터 한국에서 공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전국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초광역 커버리지가 특징이지만, 속도는 LTE 수준에 그쳐 일반 가정용보다는 원양 해상, 산간, 재난통신용 등 특수 수요를 겨냥한 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파급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국내 저궤도 위성통신 상용화의 출발점이자, 향후 통신 3사와 글로벌 위성 사업자 간 주도권 경쟁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스타링크는 이날 공식 X 계정을 통해 한국에서 고속 저지연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스타링크 서비스 가능 지역 지도에서도 한국이 기존 서비스 예정 상태에서 사용 가능 지역으로 전환됐다. 스페이스X는 개시 전날 월 8만7000원의 주거용 요금제를 먼저 공개한 데 이어, 서비스 첫날에는 월 6만4000원의 주거용 라이트 요금제와 함께 로컬·글로벌 비즈니스 요금제를 추가로 내놓으며 요금 체계를 본격적으로 정비했다.

주거용 기본 요금제는 월 8만7000원에 데이터 무제한을 제공한다. 회사 측이 제시한 기준 속도는 다운로드 135메가비트퍼초, 업로드 40메가비트퍼초 수준이다. 국내 이동통신 3사의 5세대 이동통신을 포함한 평균 다운로드 속도 1025.52메가비트퍼초, LTE 평균 다운로드 속도 178.05메가비트퍼초와 비교하면 스타링크는 LTE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다. 업로드 속도는 LTE 평균인 35.85메가비트퍼초와 비슷한 편이다.
더 저렴한 주거용 라이트 요금제는 월 6만4000원에 일부 지역의 고정된 지상 기반 장소에서 개인이나 가정용으로 쓸 수 있는 서비스다. 매달 저속 데이터는 무제한 제공되지만, 이용자가 많은 시간대에는 일반 주거용보다 우선순위가 낮아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다운로드 기준 속도는 80메가비트퍼초, 업로드는 15에서 35메가비트퍼초로 제시됐다. 스페이스X는 초기 가입자 확보를 위해 30일 무료 체험도 제공한다.
위성통신을 쓰기 위해서는 스타링크 전용 안테나인 스탠다드 키트를 별도 구매해 설치해야 한다. 가격은 55만원이며, 킥스탠드, 공유기, 스타링크 케이블, AC 케이블, 전원 공급 장치 등으로 구성된다. 단말은 상공 수백 킬로미터 상에 있는 저궤도 위성을 향해 전파를 송수신하기 때문에, 주변에 높은 건물이나 산 등 구조물이 가리지 않는 개방된 장소에 하늘을 향해 설치해야 원활한 품질이 나온다.
스타링크가 사용하는 저궤도 위성 시스템은 고도 약 530에서 570킬로미터 궤도를 도는 소형 위성 수천 기를 지구 저궤도에 촘촘히 띄우고, 지상 단말이 이들과 직접 통신하는 방식이다. 통신 신호가 고도 수만 킬로미터에 위치한 정지궤도 위성을 거쳐야 하는 기존 위성통신보다 거리가 짧아 지연 시간은 줄어든다. 다만 지상 기지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전파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길고, 단말 크기와 전력 한계가 있어 속도와 용량이 5G 유선·무선망보다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국토 면적이 좁고 지상 기지국 커버리지가 촘촘한 한국에서는 이 같은 특성이 스타링크의 포지셔닝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도심과 평지에서는 5G와 광케이블 기반 인터넷이 압도적인 속도와 안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스타링크의 속도·요금 구조는 일반 가정용 인터넷과의 정면 경쟁에서는 매력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지상 인프라를 깔기 어려운 원양 해상과 극지, 산간·오지, 그리고 대규모 재난 발생 시에는 통신망 생존성이 핵심 지표로 떠오르면서 스타링크의 활용 가치가 커진다.
사업자별 요금 체계도 이러한 수요를 전제로 설계됐다. 스타링크는 한국 서비스 개시에 맞춰 비즈니스 요금제를 로컬 프라이어리티와 글로벌 프라이어리티로 나눴다. 로컬 프라이어리티는 육상 고정 시설이나 차량 등 모바일 비즈니스 고객을 겨냥한 상품으로, 50기가바이트 기준 월 9만원, 500기가바이트 23만원, 1테라바이트 40만5000원, 2테라바이트 75만5000원으로 구성됐다. 글로벌 프라이어리티는 해상·항공 등 전 세계를 이동하는 고객을 위한 상품으로, 50기가바이트 39만7000원, 500기가바이트 103만3000원, 1테라바이트 182만8000원, 2테라바이트 341만8000원에 책정됐다. 비즈니스 이용자는 필요 시 추가 비용을 내고 데이터를 더 구입할 수 있다.
시장의 초기 반응은 해운·위성통신 사업자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텔링크, KT 샛 등이 스타링크와 공식 계약을 맺고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공급 중이다. SK텔링크는 벌크선 전문 해운사 팬오션과 스타링크 해상용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KT 샛은 선박관리 전문기업 케이엘씨에스엠과 초고층 빌딩을 보유한 부동산 기업 롯데물산을 1호 고객으로 확보했다. 원양 선박은 항로 대부분이 지상 기지국 사각지대에 속하고, 대형 빌딩의 경우 재난 발생 시 기존 유선망·이동통신망이 단절될 수 있는 만큼 위성 기반 백업 통신망 수요가 있다.
특히 스타링크는 지진과 태풍, 산불 등으로 지상망이 파괴된 상황에서도 하늘만 보이면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국가 재난통신망이 특정 사업자의 지상 인프라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저궤도 위성 기반의 보조망을 병행 구축하면 위기 상황에서의 회복탄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정부가 위성 기반 재난통신망을 제도권에 편입하고, 공공 조달 기준을 마련할 경우 스타링크와 같은 민간 위성망의 역할이 커질 여지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저궤도 위성통신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은 다수의 통신 위성을 쏘아 올려 전 지구 커버리지를 확보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통신 3사와 위성 전문 기업들이 스타링크와의 협력과 동시에 자체 위성망 구축, 위성·지상 융합망 기술 개발을 병행하는 양상이다. 지상 5G와 위성 간 핸드오버, 전파 간섭 관리, 주파수 공존 정책 등은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타링크의 한국 진입이 위성통신을 지상망 보완재가 아닌 독립적인 인프라 옵션으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요금 대비 속도, 전용 단말 설치 부담, 건물 내부 수신 한계 등은 서비스 확산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통신 업계에서는 스타링크와 같은 위성망의 장점을 살리면서, 지상망과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실제 수요처에서 안정적인 품질을 입증하고, 제도권 통신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