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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슬림이 독 됐나”…아이폰에어, 가치 폭락에 폴더블 전략도 흔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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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슬림 스마트폰 전략이 애플의 프리미엄 아이폰 라인업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께 5.6밀리미터를 내세운 아이폰에어가 출시 직후 부진한 판매에 이어 중고폰 시장에서도 이례적인 가치 폭락을 겪으면서다. 아이폰은 통상 경쟁사 제품 대비 감가상각률이 낮고, 출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고 시세가 안정되는 패턴을 보여 왔다. 그러나 아이폰에어는 출시 10주가 지난 시점까지 역대 아이폰 가운데 가장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며, 애플의 하드웨어 포트폴리오 전략과 향후 폴더블 아이폰 전개 구상에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고 IT 기기 거래 플랫폼 셀셀은 5일 아이폰17 시리즈 출시 후 10주간 미국 시장 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아이폰에어가 판매 측면에서 실패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 흐름이 재판매 가치 급락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셀셀은 미국 내 40곳이 넘는 주요 매입 업체의 실제 거래 가격을 집계해 감가상각률을 산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폰에어의 중고가는 저장 용량에 따라 초기 출고가 대비 최소 40.3퍼센트에서 최대 47.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출시 두 달 반 만에 몸값이 사실상 반 토막 난 것이다. 특히 고용량 모델일수록 가치 방어가 더 취약했다. 출고가 1399달러로 책정된 아이폰에어 1테라바이트 모델의 10주 차 중고가는 668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하락률 47.7퍼센트로, 셀셀이 분석한 전체 아이폰17 시리즈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512기가바이트 모델 역시 출고가 1199달러에서 약 45퍼센트가 깎였고, 256기가바이트 기본 모델도 999달러 대비 40.3퍼센트 하락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아이폰16 플러스 41.6퍼센트, 아이폰16 44.2퍼센트 하락률과 비교해도 동급 혹은 그보다 나쁜 수준으로, 신형 모델 프리미엄을 전혀 지키지 못한 셈이다.

 

반대로 아이폰에어를 제외한 아이폰17 라인업은 중고 시장에서 견고한 방어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폰17 시리즈 나머지 모델들의 평균 감가상각률은 34.6퍼센트로, 전작 아이폰16 시리즈의 동일 기간 평균 39퍼센트 하락보다 양호하다. 특히 상위 프로 라인업은 애플의 가격 프리미엄 전략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256기가바이트 아이폰17 프로 맥스는 10주 동안 26.1퍼센트만 가치가 떨어져 전체 모델 가운데 가장 높은 방어력을 기록했고, 프로와 프로 맥스 전 구성 모델이 모두 40퍼센트 미만 하락률을 유지했다.

 

문제는 아이폰에어의 하락세가 아직 꺾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셀셀 데이터에서 아이폰15와 16 시리즈는 출시 약 10주 시점에 감가상각 곡선이 완만해지며 사실상 가격이 안정 단계로 접어드는 패턴을 보였다. 그러나 아이폰에어는 10주 차까지도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셀셀은 아이폰에어의 가격 궤적을 두고 다른 아이폰 모델들과 비교해 매우 이례적인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애플 내부 생산 전략의 급제동과도 맞물린다. 아이폰에어는 지난 9월 아이폰17 시리즈와 함께 공개되며 역대 가장 얇은 두께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출시 후 2개월여 만에 판매 부진이 뚜렷해지자 애플이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해외 매체는 애플이 아이폰에어 부품 주문량을 생산 종료 단계에 근접한 수준까지 줄였다고 전했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 궈밍치는 애플이 이미 확보된 아이폰에어 재고만으로 향후 수요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애플 협력사들은 내년 1분기까지 아이폰에어 생산량을 80퍼센트 이상 축소할 여지가 크다. 공급 조정이 중고 시장에서도 신품 대체 수요를 자극하지 못한 채, 오히려 수요 위축과 가격 추가 하락으로 이어진 셈이다.

 

시장에서는 초슬림 설계가 오히려 소비자 선택에서 약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디자인이나 경량성보다 배터리 지속 시간, 카메라 성능, 내구성 같은 실사용 기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두께를 줄이기 위해 양보된 요소들이 체감 가치 하락으로 연결됐다는 해석이다. 프로 라인업의 견조한 가치 방어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향후 제품 로드맵에도 재조정 신호가 감지된다. 당초 업계에서는 아이폰18과 함께 아이폰에어2가 내년 가을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로서는 최소한 내후년 초로 출시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수요 부진과 재고 조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애플이 같은 콘셉트의 후속작을 서둘러 내놓을 유인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폰에어 라인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이폰에어가 폴더블 아이폰을 위한 일종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본다. 초슬림 설계 과정에서 축적한 소형화 기술과 내부 부품 재배치, 배터리 구조, 열 설계, 소프트웨어 최적화 경험이 향후 폴더블 아이폰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폴더블 아이폰은 아이폰에어와 동일한 소재를 다수 공유하고, 유사한 구조적 설계를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아이폰에어의 실패 조짐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디자인 차별화보다 기능성과 사용 경험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동시에 애플이 폴더블을 포함한 차세대 폼팩터 전략을 다듬는 과정에서, 실험적 제품과 대량 판매용 주력 모델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아이폰에어가 단발성 실험에 그칠지, 폴더블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교두보로 재설계될지 주시하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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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어#아이폰17#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