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케이크 트리 아래에서”…겨울밤 청계천 걸으며 도심의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
요즘 퇴근길에 청계천으로 향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잠시 걸음을 늦추고 빛의 길을 따라 걷는 겨울밤 산책이 일상이 됐다. 사소한 우회로 같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한 해의 마음을 천천히 정리한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청계광장 물결 위로 금빛 불빛이 번지면 회색 빌딩숲은 순식간에 환한 정원으로 바뀐다. 아이들은 거대한 케이크 모양 트리를 올려다보며 조형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남기며 서로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어깨를 조금 더 가까이 붙이는 이 겨울 장면이, 청계천을 하나의 야간 문화무대로 만든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2025 겨울, 청계천의 빛 축제는 황금빛 포근함 속, 모두가 하나되는 겨울을 주제로 12월 12일부터 31일까지 청계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일대에 조성된 이 빛의 공간은 세대를 잇고 시민이 하나가 돼 어우러지는 하모니를 표방하며, 평소 그냥 지나치던 열린 광장을 머물고 싶은 밤 산책 코스로 바꾸고 있다.
축제의 중심에는 금빛으로 물든 달콤한 케이크 트리가 선다. 층층이 쌓인 케이크 형상의 구조물 위로 따스한 조명이 촘촘히 박혀 있고, 주변을 요정과 곰인형, 미니 기차 같은 사랑스러운 조형물이 둘러싸고 있어 관람객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는다는 한 시민은 케이크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왔다가, 어느새 올 한 해를 같이 떠올리게 된다”고 표현했다.
야간경관 조형물 전시는 개막일인 12월 12일부터 축제 마지막 날까지 청계광장 일대를 밝힌다. 조형물 사이사이에 배치된 미디어아트 장치는 빛의 색과 패턴을 시시각각 바꾸며, 같은 길을 다시 걸어도 매번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물소리, 도시의 소음, 은은한 음악이 겹치면서 관람객은 청계천 위에 펼쳐진 공공 미디어 갤러리를 거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SNS에는 케이크 트리와 빛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한 인증샷이 연말 풍경처럼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점등식은 12월 12일 열려 첫날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전 구간 조명이 한 번에 켜지면,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탄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밤공기를 가른다. 주최 측은 이 점등식을 11년간 이어진 축제가 시민과 함께 성장해 온 장면을 다시 공유하는 시간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을 지켜본 사람에겐, 그것만으로도 개인의 연말 타임라인을 확인하는 의식처럼 남는다.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꼬마기차도 빠지지 않는다. 빛으로 장식된 선로를 천천히 달리는 작은 기차는 아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고, 부모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춘다. 부모와 아이가 나란히 기차에 올라 주변 조형물을 바라보는 동안, 청계천의 빛은 한 세대의 추억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한 부모는 “아이에게는 처음 보는 풍경인데, 나는 어릴 적 연말 거리의 불빛이 떠올라서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고백했다.
2025 겨울, 청계천의 빛은 경향신문과 2025 청계천의 빛 조직위원회가 함께 운영하며, 11년간 축적된 노하우로 도심 야간경관 문화를 넓혀 왔다. 관람 동선과 포토존을 세심하게 배치해 혼잡을 줄이고, 누구나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꾸린 점도 눈에 들어온다. 축제 측은 “도심의 빛 축제가 화려함보다 안전한 쉼과 만남의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댓글 반응도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잠깐 걷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약속이 없어도 혼자 가볍게 들를 수 있고, 퇴근 후 동료와 함께,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다시 찾게 되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이곳은 사람과 사람, 낮의 나와 밤의 나를 이어주는 작은 구심점이 되고 있다.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축제는 하루의 끝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하늘과 물, 빛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을 선물한다. 붉게 언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조금 더 가까이 나란히 붙이고, 케이크 트리 너머로 저물어가는 한 해를 조용히 떠나보낸다. 거창한 계획 대신, 빛을 따라 흐르는 이 짧은 산책이 바쁜 도시 속에서도 서로를 비추는 마음의 여유를 떠올리게 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