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5 차세대 방독면”…한컴, 185억 공급으로 방산 확대
화생방 위협 대응 기술이 국방 안전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군용 방독면은 단순 보호 장비를 넘어, 작전 지속 능력과 생존성을 좌우하는 핵심 방산 품목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소방 방재와 방산 장비를 함께 다루는 복합 안전 기업들이 고기능성 방호 기술을 축적하면서, 군과 민간 재난 대응 시스템 사이의 기술 교류도 빨라지는 모습이다. 업계는 이번 계약을 국내 개인 화생방 보호 장비 시장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컴라이프케어는 5일 방위사업청과 185억 원 규모의 K5 방독면 9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에 따라 약 8만여 개의 K5 방독면이 내년까지 각 군에 순차적으로 납품된다. 2015년 초도 양산 이후 9차 물량까지 수주에 성공한 것으로, 단일 플랫폼 기반 방독면 사업이 장기 양산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K5 방독면은 기존 군용 방독면 대비 시야와 호흡 편의성을 대폭 개선한 차세대 화생방 보호 장비다. 안면부 렌즈를 양쪽으로 나누는 이안식 대신, 하나의 넓은 렌즈를 적용한 단안식 구조를 채택해 착용자의 수평 시야와 하방 시야를 넓혔다. 화생방 상황에서 장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무기 조준, 지형 관측, 차량·장비 조작을 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시야 확보는 곧 작전 수행 능력과 직결된다.
양쪽에 부착된 정화통 설계도 핵심 기술 포인트로 꼽힌다. 정화통은 공기 중 화학 작용제와 유독 가스를 필터링하는 카트리지 구조로, 내부 필터 매질의 구성과 공기 흐름 설계에 따라 호흡 저항이 달라진다. K5는 정화통을 좌우에 분산 배치하고, 공기 유입 경로를 최적화해 호흡 저항을 줄이는 설계를 적용했다. 피복과 방탄 장구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전투 행동을 지속해야 하는 병사 입장에서는 호흡 부담 감소가 피로도와 임무 지속 시간에 큰 차이를 낳는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K1, K2 계열 방독면의 한계로 지적되던 좁은 시야와 높은 호흡 저항 문제를 동시에 보완했다. 기존 제품이 보호 기능 중심 설계였다면, K5는 인체공학과 시야 확보, 장시간 착용성을 함께 고려한 플랫폼으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생방 방독 기술과 소재 공학, 인체공학 설계를 통합한 융합 방산 장비라는 점에서 IT 기반 시뮬레이션과 성능 검증 기술 접목 여지도 크다.
개발 연혁을 보면 장기 방산 과제의 특성이 드러난다. 한컴라이프케어는 2010년 K5 방독면 개발에 착수해 2014년 개발을 완료했고, 2015년부터 초도 양산과 군납을 본격화했다. 개발과 양산, 전력화에 이르는 전 주기에 10년 이상이 투입된 셈이다. 국내 기업이 자체 기술로 신규 군용 방독면 플랫폼을 개발하고, 지속 양산 체제까지 구축한 사례라는 점에서 방호 장비 국산화의 대표 모델로 평가된다.
시장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방부는 2030년까지 약 2천9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노후 방독면을 K5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기존 재고 교체와 신규 수요를 합치면, 향후 몇 년간 안정적인 물량이 확보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군 전 장병을 대상으로 한 개인 보호 장비라는 특성상, 양산 스케일과 품질 보증 기준도 높게 설정돼 방산 기업의 생산 효율 개선과 공정 자동화 투자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국내 시장에서는 한컴라이프케어가 군용 방독면 분야의 대표 공급사로 자리해 왔다. 소방용 공기호흡기, 산업용 방독 마스크 등 민수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필터 소재 기술과 인체공학 설계를 고도화한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는 미국, 유럽의 방호 장비 전문 기업들이 스마트 센서와 통신 모듈을 결합한 지능형 방독면 개발에 나서고 있어, K5 이후 세대에서 국내 업체의 기술 도약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화생방 보호 장비는 안전 규제와 인증 문턱이 높은 분야다. 군용 방독면은 국방 규격에 따라 독성 가스 차단 성능, 호흡 저항, 시야율, 내구성, 환경 적응성 등 수십 개 항목에 대한 시험을 거쳐야 한다. 방위사업청의 시험평가를 통과해야만 전력화가 가능하며, 양산 과정에서도 정기 공인시험과 로트별 검사가 반복된다. 실제 화생방 공격 상황에서 한 번의 실패도 허용되지 않는 장비라는 특성상, 품질 관리와 추적성 확보가 핵심 규제 요구 사항으로 작용한다.
한편 해외에서는 군용 방독면에 IT와 바이오센서 기술을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방산 기업들은 공기 중 유해 물질 농도와 유형을 실시간 파악하는 센서, 착용자의 호흡 상태와 심박수를 모니터링하는 생체 신호 측정 모듈을 방독면에 탑재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디지털화 흐름은 장기적으로 한국 군용 방독면 체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선영 한컴라이프케어 대표는 K5 방독면 사업을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K5를 비롯한 방산 사업을 기반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수익성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산 분야에서의 안정적인 장기 수주를 바탕으로 소방과 산업 안전, 특수 방호 장비까지 연계한 통합 안전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방호 장비 산업이 글로벌 수준의 화생방 대응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 과제와 민수 재난 안전 과제 간 연계 연구와 데이터 공유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군용 방독면에서 축적한 필터 성능 데이터와 인체공학 설계 노하우가, 화학 공장 사고나 대형 화재 등 민간 재난 대응 장비 기술로 이전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계는 이번 K5 방독면 대규모 교체 사업이 실제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며, 차세대 지능형 보호 장비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