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해킹 신뢰회복 시험대…KT, 차기 CEO 3파전 주목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이 통신 산업의 경쟁 판도를 바꾸는 가운데 해킹 사태로 흔들린 통신 인프라 신뢰 회복이 통신사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차세대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보안이 결합된 통신 플랫폼에서 데이터 거버넌스와 규제 대응까지 총괄할 최고경영자의 전략 역량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업계는 KT가 추린 차기 CEO 최종 후보 3인을 두고 해킹 사고 이후의 신뢰 회복과 AI 기반 디지털 플랫폼 기업 전환을 동시에 이끌 ‘리더십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9일 오후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군을 3명으로 압축했다.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주형철 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홍원표 전 SK쉴더스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 가운데 1명이 16일 심층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로 확정되며,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대표 선임 절차가 진행된다.

이번 후보군은 KT 내부 성장형, 정책 연계형, 기술·보안 중심형이라는 세 가지 색채로 뚜렷이 갈린다. 통신·클라우드·AI·보안을 잇는 인프라 기업인 KT의 특성상 어느 축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차기 경영 전략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윤영 전 사장은 1992년 한국통신 입사 이후 30년 넘게 KT에서 근무한 정통 KT맨이다. 미래사업개발, 글로벌사업, 기업부문 등 주요 조직을 거쳐 2020년 기업부문장에 올랐고 2023년에는 사장 후보 선임 과정에서 최종 후보군까지 오른 바 있다. 유무선 통신망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B2B 플랫폼 사업을 키워 온 경험을 쌓아온 만큼 기업 고객 대상 디지털 전환 비즈니스 확대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KT 내부 사정에 밝고 조직 안정과 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은 해킹 사태 후 내부 동요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점으로 거론된다. 반면 커리어가 기업 간 거래와 글로벌 사업 중심에 집중돼 일반 소비자 대상 모바일·미디어·콘텐츠 사업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5G와 AI 기반 개인화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B2C 감각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주형철 전 대표는 세 명 중 유일한 비 KT 출신이자 정책통으로 분류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냈고, 현 정부 출범 당시 국정기획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으로 활동해 정권 교체기를 두루 경험했다. IBM에서 시스템엔지니어로 출발한 뒤 SK텔레콤, SK C&C 등에서 ICT 계열 관리 임원을 지냈고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4년간 재임했다. 이후 서울산업진흥원 대표, 경기연구원장 등을 맡으며 공공기관 운영 경험을 쌓았다.
정부 정책과 규제 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통신 인프라 기업과 정부 정책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통신망 안정성 규제, 데이터 보호, 디지털 플랫폼 공정 경쟁 등 정책 변수에 민감한 시기인 만큼 대외 소통과 공공·지역 경제 협력 측면에서 장점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일부에서는 정치적 낙하산 논란이 부담 요소로 거론된다. 최근 통신·플랫폼·반도체 분야에서 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에 대한 정치 독립성 요구가 커지는 만큼 주 전 대표가 조직 안팎의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지에 시장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홍원표 전 대표는 삼성과 통신사를 모두 거친 기술통으로 분류된다. 삼성전자에서 IM부문 미디어솔루션센터장과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으며 모바일·콘텐츠·플랫폼 전략을 이끌었고, 삼성SDS 대표로 클라우드와 제조 IT,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을 총괄했다. 과거 KT 근무 당시에는 KTF 마케팅부문장과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을 지내며 이동통신·무선 데이터 사업을 경험했다. 최근까지는 SK쉴더스 대표를 맡아 보안 사업을 총괄해 통신, IT, 보안, 제조를 걸친 경력을 쌓았다.
KT가 추진하는 AI 기반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보안 서비스 통합 전략과 맞물려 홍 전 대표의 기술·사업 감각이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스마트폰·클라우드·보안 시장에서의 경쟁 경험을 토대로 서비스 기획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반면 잦은 이직 이력과 통신업 직접 경험이 20년 이상 된 점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급변한 5G, 6G 로드맵과 통신 요금 규제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지가 변수다.
이번 CEO 선임 과정에서 기술적 관점뿐 아니라 해킹 사고 이후의 신뢰 회복 전략이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 해킹 사태를 계기로 통신사의 보안 능력과 장애 대응 체계, 데이터 보호 수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 AI 기반 이상 징후 탐지, 클라우드 보안, 양자암호 통신 등 차세대 보안 기술 투자 방향을 새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CEO의 기술 이해도와 의사결정 속도가 경쟁력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외 통신사 경쟁 구도도 차기 KT 대표의 과제를 키우는 요소다. 해외에서는 미국 빅테크와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가 네트워크를 단순 회선에서 서비스 플랫폼으로 전환하며 통신사의 역할을 잠식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국내에서도 이동통신 3사가 모두 AI 콜센터, AI 네트워크 운영, 구독형 콘텐츠·금융 플랫폼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KT가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산업용 사물인터넷까지 통신 인프라 위에 얹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얼마나 빠르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수익성 회복 속도가 갈릴 수 있다.
관건은 규제와 산업 전략을 아우르는 리더십이다. 통신 인프라는 필수 공공재 성격을 지니고 있어 과기정통부, 공정위, 국회 등과의 정책 협의가 빈번하다. 동시에 클라우드와 데이터, AI 분야는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 요구가 강해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정책 환경에 익숙한 후보냐, 시장과 기술에 밝은 후보냐에 따라 KT의 대관 전략과 혁신 속도 사이에서 균형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16일 심층 면접을 통해 각 후보의 전략 구상과 위기 대응 역량, AI·보안·디지털 전환에 대한 이해도를 집중 검증할 예정이다. 통신망 안정성 강화, 해킹 재발 방지, AI 서비스 상용화 로드맵, 글로벌 파트너십 구상 등 구체적 실행 계획이 주요 평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KT CEO 선임 결과가 통신·AI·보안이 결합된 국내 디지털 인프라 경쟁의 향방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차기 리더십이 해킹 사태 이후의 신뢰 회복과 AI 기반 성장 전략을 동시에 달성하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