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호황인데 마진은 낮다”…브로드컴 경고에 뉴욕증시 급락, 반도체·나스닥 직격탄

강민혁 기자
입력

12일(현지시각) 미국(USA)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공지능(AI)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브로드컴의 낮은 AI 부문 마진 언급과 중국의 미국산 AI 칩 기피 보도가 겹치면서 기술·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매물이 쏟아졌고, 나스닥지수는 거의 1.7% 급락했다. 이번 조정은 그동안 고평가 논란을 안고 치솟았던 AI 관련주의 기대에 제동을 거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지시각 기준 12일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45.96포인트(0.51%) 내린 4만8천458.05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73.59포인트(1.07%) 떨어진 6천827.41을 기록했고,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종합지수는 398.69포인트(1.69%) 급락한 2만3천195.17에 장을 마쳤다. 장중 내내 AI·반도체 섹터에 대한 매도세가 지수를 끌어내리는 흐름이었다.

뉴욕증시, 브로드컴 AI 마진 우려에 일제 하락…나스닥 1.69% 급락
뉴욕증시, 브로드컴 AI 마진 우려에 일제 하락…나스닥 1.69% 급락

시장의 촉발 요인은 브로드컴이었다. 브로드컴의 호크 탄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실적 설명회에서 올해 1분기 비(非) AI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빠르게 늘고 있는 AI 관련 매출의 총마진이 비 AI 사업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이 발언을 두고 AI가 매출 성장은 견인하더라도 수익성 측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브로드컴은 AI 수요 증가에도 2026회계연도 AI 매출 전망을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향후 6분기 동안 출하 예정인 AI 제품 수주 잔고가 최소 7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시장의 높은 기대를 달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해졌다. 맞춤형 반도체(ASIC) 시장을 선도해 온 브로드컴이 AI 부문의 마진 구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그간 낙관론이 쌓여 있던 AI 테마 전반으로 실망 매도가 번졌다.

 

브로드컴 주가는 이날 11.43% 급락했다. 이틀 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1조9천500억달러까지 치솟았던 시가총액은 약 1조7천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단기간에 2천500억달러가량 증발한 셈으로, AI 대표 종목 중 하나로 꼽혀 온 브로드컴의 변동성이 AI 종목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엔비디아 역시 투자 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AI 칩 H200의 대(對)중국 수출을 허용했음에도, 중국 측이 해당 제품 수입에 부정적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매도세가 강조됐다. 백악관 AI 담당 조정관 데이비드 색스는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산 칩을 거부하고 있으며, 반도체 자립을 위한 행보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중국의 미국산 첨단 칩 수입 기피는 이미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상태라, 엔비디아와 미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중장기 성장 경로에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급락 여파로 AI 및 반도체 비중이 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5.10% 하락했다. 지수 내 시가총액 비중 1, 2위를 차지하는 두 종목이 동시에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다른 반도체주들도 동반 약세를 면치 못했다. 대만 TSMC, 네덜란드 ASML, AMD,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인텔 등 주요 종목들이 4% 안팎으로 밀려나며 지수 전반을 끌어내렸다.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수요에 민감한 오라클도 기술주 조정의 또 다른 축이었다. 오라클은 일부 데이터센터 완공 시점을 약 1년가량 늦출 수 있다는 보도가 전날 나오면서 10% 넘게 급락했는데, 이날도 4.47% 추가 하락했다. 장 후반 오라클이 관련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성명을 냈지만, 매도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I 연산 수요를 떠받치는 인프라 투자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AI 생태계 전반의 성장 기대에 부담을 주는 모양새다.

 

업종별로 보면 기술주가 2.87% 떨어지며 하락을 주도했다. 에너지 업종도 국제 유가와 경기 전망 불확실성을 반영하며 1%가량 내렸다. 반면 경기 방어 성격이 강한 필수소비재 업종은 약 1% 상승해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단기 조정 국면에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가진 소비·방어 섹터로 자금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는 초대형 기술주들의 주가는 혼조세를 보였다. 애플은 강보합권에서 거래를 마쳤고, 테슬라는 2.70% 오르며 선방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로 분류되는 대형 기술주는 1% 안팎의 비교적 제한적인 하락에 그쳤다. AI 인프라와 플랫폼을 장악한 이들 기업은 여전히 구조적 성장 기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반면 전통 제조업과 우량주 중심의 매수세는 뚜렷하게 유입됐다. 다우지수 구성 종목 가운데 JP모건체이스, 비자, 존슨앤드존슨, 홈디포, 프로터앤드갬블(P&G), 유나이티드헬스 등이 1%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보잉, 버라이즌도 2% 안팎 올랐다. AI 성장주 조정 국면에서 방어주와 소비 관련주가 상대적 피난처로 선택되고 있는 셈이다.

 

아르젠트캐피털매니지먼트의 제드 엘러브로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날 시장에서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AI 전망 전체를 비관적으로 보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수익성과 수요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통화정책 기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내년 4월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43.5%로, 동결할 가능성을 39.0%로 반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지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리 경로가 급변하지 않는 가운데 AI 섹터 고평가 논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조정 압력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장 대비 0.89포인트(5.99%) 오른 15.74를 기록했다. 절대 수준으로는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AI 기대와 관련한 실망감이 커지는 가운데 경기와 금리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뉴욕 현지 언론과 글로벌 금융 매체들은 이날 조정을 두고 “AI 랠리의 속도를 점검하는 조정”이라며, 그동안 AI 스토리에 과열됐던 시장이 수익성과 실제 수요를 따져보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AI 투자가 구조적 성장 동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단기적으로는 마진과 규제, 미중 기술 갈등이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브로드컴과 엔비디아를 둘러싼 이번 변동이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타난 조정이라고 본다. 중국의 미국산 칩 수입 기피 움직임이 강화될 경우, 미국(USA)과 중국(China) 간 기술 디커플링이 심화되며 기업 실적과 투자 사이클 모두에 구조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I 속도전 속에서 수익성과 지정학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환경이 전개되는 만큼, 향후 뉴욕증시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AI 관련 종목을 둘러싼 변동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는 이번 조정이 AI 투자 열기에 어떤 균형을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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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엔비디아#나스닥종합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