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판단 나와도 관세 유지”…미국 재무장관, 대체 법 근거로 무역 공세 장기화 시사
현지시각 기준 3일, 미국(USA) 뉴욕에서 열린 ‘2025 딜북 서밋’ 행사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을 위법으로 판단하더라도 대체 법적 수단을 동원해 현행과 같은 수준의 관세 체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무역 공세가 사법 심사와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요 교역국과 국제 금융시장의 긴장을 키우고 있다.
베선트 장관은 행사 발언에서 미국 무역법 301조와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를 거론하며 “우리는 무역법 301조와 122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활용해 (현 상호관세와) 동일한 관세 구조를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연방대법관들이 지난달 구두변론 과정에서 상호관세의 법적 정당성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 가운데 나온 언급이라, 대법원 판결 결과와 관계없이 관세 장벽을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는 연방정부가 현재의 관세 조치를 영구적으로 시행할 것이냐는 질문에 “영구적으로 해야 한다”고 답해 관세 정책을 단기 전술이 아닌 장기 전략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통상 정책이 향후 정권 변화나 사법 판단과 무관하게 보호무역 기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무역법 301조는 미국이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관행에 직면했다고 판단할 경우, 일정 기간 통지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관세 인상이나 수입 제한 등 광범위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여러 차례 활용돼 왔으며,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을 겨냥한 통상 압박의 법적 기반으로 종종 동원돼 왔다.
무역법 122조는 미국의 심각한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최대 15%의 관세를 150일 동안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적용 기간이 제한적이지만, 특정 국가나 품목에 대한 단기적·집중적 관세 조치의 근거로 쓰일 수 있어, 기존 상호관세가 무효화될 경우 보완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이 국가 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될 때 관련 부처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이 조항을 근거로 철강과 알루미늄 등 주요 산업 품목에 안보 논리를 적용해 고율 관세를 부과해 온 바 있다. 베선트 장관의 설명은 이러한 안보 조항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 관세 장벽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구상은 상호관세가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단으로 무너질 경우에도, 무역법과 안보 관련 법령을 조합해 유사 수준의 관세 체계를 사실상 ‘우회 복원’하겠다는 전략으로 비쳐진다. 각 조항은 적용 요건과 기간, 대상이 상이하지만, 종합적으로 운용할 경우 현행 상호관세에 준하는 압박 수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베선트 장관의 판단으로 보인다.
당사국인 미국 내에서도 상호관세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돼 왔다. 찬성 측은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반대 측은 관세 인상이 수입 물가 상승과 기업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미국 소비자와 산업계에 역풍을 가져온다고 비판해 왔다. 연방대법원의 구두변론에서 다수 대법관이 상호관세의 법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한 배경에는, 행정부 재량의 범위와 의회의 통상 권한을 둘러싼 헌법적 논쟁이 자리 잡고 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이러한 법적 공방과 별개로,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과 관세 압박을 통상 정책의 핵심 도구로 계속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석상에서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교역 상대국과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압박 수위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베선트 장관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선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차기 연준 의장 인선 작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보군이나 일정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했다. 시장에서는 연준 수장의 성향과 독립성이 미국의 금리 정책과 글로벌 자본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베선트 장관의 발언을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다.
최근 미국 주요 언론은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해싯 위원장을 가리키며 “아마 잠재적 연준 의장도 여기 있다”고 언급해, 해싯 위원장이 유력한 선택지라는 관측에 힘을 보탰다. 시장에서는 친행정부 성향의 인사가 연준 수장을 맡을 경우, 연준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선트 장관은 또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인선 방식과 관련해 지역 대표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새로운 거주 요건 도입을 제안했다. 그는 지역 연은 총재직이 애초 해당 지역 출신 인사가 지역 경제의 특성을 반영하도록 설계된 자리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총재 후보를 해당 연은 관할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한 인사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구상은 연은 총재 인사가 뉴욕 등 금융 중심지 출신 인사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동시에 인선 권한을 쥔 행정부가 기준을 새로 설계함으로써 연은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연준 시스템 내부의 인사 구조 변화는 통화정책 결정 과정의 역학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금융시장은 향후 구체안과 의회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베선트 장관의 연이은 발언이 관세 정책과 통화·금융 인사를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 기조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적으로는 무역법과 안보 조항을 총동원해 강경 관세 정책을 유지하고, 대내적으로는 연준 인사 체계에 지역성과 거주 요건을 강조해 인사 통제를 강화하려는 방향성이 동시에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제사회는 향후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백악관의 후속 조치가 글로벌 무역 질서와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