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북정책 주권은 통일부”…한미 협의 놓고 통일부·외교부 기싸움 격화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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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맞섰다. 정부가 내년부터 남북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양 부처 간 이견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외교안보 라인 내 조율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미 외교당국은 이르면 16일 대북정책 및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관련 후속 논의를 위한 정례 정책 공조회의를 열 계획이다. 한국측 수석대표는 정부의 북핵협상 대표인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맡을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의 핵심 의제가 대북정책 조율에 맞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애초 통일부 관계자의 참석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통일부는 회의 하루 전인 15일 오후 공식적으로 불참 입장을 내놨다. 통일부는 "한미 간 외교 현안 협의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교부가 진행하는 미측과의 협의는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통일부는 대북정책 대미협의 범위와 관련해 선을 그어두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통일부는 "국방정책은 국방부가, 외교정책은 외교부가 미국과 협의하고 있으며, 남북대화·교류협력 등 대북정책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필요시 통일부가 별도로 미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 주도 회의는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논의로 제한하고, 남북대화·교류협력 등은 통일부가 직접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 같은 기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발언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정동영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정책,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고,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강조하며, 한미 외교당국 간 대북정책 논의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동안 대북 관련 한미 협의를 주로 맡아온 외교부를 향해 통일부가 주도권을 분명히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외교부의 시각은 다르다.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양 정상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외교부는 후속 협의를 조인트 팩트시트로 한정하더라도, 대북정책 전반이 논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는 이미 국제 이슈가 됐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할 대표적인 외교 현안이라는 판단이다.

 

정부의 북핵협상 수석대표가 외교부 소속인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인 점도 이런 기조를 반영한다. 외교전략정보본부는 2006년 한반도평화교섭본부로 출범한 뒤 지난해 조직 명칭을 바꾼 기구로, 외교부는 오랜 기간 한반도 및 대북정책 협상의 전면에 서 왔다. 한미동맹 틀 속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온 관행이 제도화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일부가 주장하는 대로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명확히 분리하는 접근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과 협의하는 대북정책에서 핵심 어젠다는 북핵 문제이며, 이는 한미일 안보 협력과 유엔 대북제재 체제 등 국제질서와 직결된 외교 과제라는 이유에서다.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 지위를 강조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문제 또한 북핵을 배제하고 논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북한 문제는 한미동맹의 핵심 의제라는 점도 변수다. 통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미 외교당국은 대북정책 논의를 자제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려는 통일부의 문제 제기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동맹 차원의 전략 조율 필요성과 상충할 소지가 크다는 평가가 함께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제기한 문제의식 자체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 특수성이 대미 협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북핵·제재 중심 접근이 남북 대화와 교류 여지를 지나치게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처 간 이견 노출 역시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럼에도 공개적인 파열음이 장기화될 경우 정부 대북라인이 분열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컨트롤타워 격인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의 조정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문이 커지고 있다. 이화여대 박원곤 교수는 "대통령 안보실은 이런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서 있는 조직"이라며 "북한이 우리와 마주 앉지 않겠다고 해 한미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외교부 주도의 한미 협의체에 통일부도 같이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와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교부와 통일부의 역할 분담과 협의 구조를 어떻게 재정립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정치권과 외교안보 당국은 한미 공조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조율 방안을 찾기 위해 향후 청와대와 국회를 중심으로 추가 논의에 나설 전망이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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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외교부#국가안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