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는 더 조용해졌다”…경북에서 찾는 사색과 레트로 감성 여행
요즘 겨울에 경북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바다는 여름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야 비로소 고요한 풍경과 깊은 사색을 즐기려는 이들의 일상이 됐다. 사찰과 정원, 레트로 감성 박물관, 도시 해변까지 한 번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의 이유를 더해준다.
경북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담는 곳 중 하나는 영주시 부석면의 부석사다. 절벽 위에 자리한 이 산사는 겨울에 특히 고즈넉한 매력을 드러낸다. 무량수전과 석탑, 오래된 기둥과 처마들이 차가운 공기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속도가 느릿해진 공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산봉우리들의 겨울빛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여기선 말소리도 아깝다”고 표현하는 여행자들이 있을 만큼, 풍경이 스스로 이야기를 건네는 장소다.
포항시 북구 두호동의 영일대해수욕장은 또 다른 얼굴의 겨울 경북을 보여준다. 도시와 바다가 맞닿은 이곳 해변은 여름의 북적임 대신, 잔잔한 파도 소리와 겨울바람이 만든 여백을 품고 있다. 바다 위로 뻗어 나간 영일대 누각은 야간에도 은은하게 빛나며 포항 시가지의 불빛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모래사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출렁이는 파도보다 자신의 생각에 먼저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주시 하동의 추억의달동네는 겨울 바다와 산사 사이에 색다른 온기를 채워 넣는 공간이다. 각종 소품과 골목, 옛 상점들을 재현한 이곳은 기성세대에게는 “내 어린 시절이 여기에 있다”는 감정을, 젊은 세대에게는 처음 보는 세계를 탐험하는 신선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흑백 사진 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간판과 교실, 동네 잡화점이 박물관 안에 펼쳐지면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며 “이런 때가 있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레트로 감성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요즘, 이 공간은 세대 간 추억을 공유하는 작은 무대처럼 활용된다.
칠곡군 가산면의 가산수피아는 겨울에도 푸른 숨을 유지하는 민간정원이다. 넓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나무와 언덕 사이를 걷다 보면 도시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겨울 자연의 질감이 서서히 다가온다. 파크골프장과 맨발 걷기 코스는 가벼운 운동과 힐링을 겸한 체험 공간으로 인기를 얻는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함께 코스를 돌며 “몸을 움직이니 마음도 덜 복잡해진다”는 소감을 자주 표현한다. 곳곳에 놓인 벤치와 쉼터에서는 뜨거운 음료 한 잔을 손에 쥐고, 계절이 주는 한 박자 느린 리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여행에 기대하는 마음의 방향에서도 읽힌다. 화려한 관광보다 조용한 산책과 가벼운 체험, 그리고 사진 속에만 남던 옛 풍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한 여행자는 “멀리 가지 않아도, 익숙한 듯 낯선 경북의 겨울 풍경만으로도 머릿속이 리셋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겨울 여행 트렌드를 “속도 조절을 위한 계절의 휴식”으로 해석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일상에서 한 번쯤은 시간을 내려놓고 싶을 때, 사람들은 번잡한 축제 대신 고요한 산사나 텅 빈 해변을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추억을 소환하는 레트로 공간과 몸을 직접 움직이며 자연을 느끼는 정원 체험은 정서적 안정감을 더해주는 장치가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여행 후기도 흥미롭다. “겨울 바다를 보고 나니 내 마음도 조금 덜 요란해졌다”, “부석사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추억의달동네에서 부모님이 더 즐거워하셨다”, “가산수피아 맨발 걷기 후에 밤잠이 더 잘 왔다”는 반응이 공감을 모으고 있다. 댓글들 사이에선 “이제 여행은 남에게 자랑하려고 가는 게 아니라, 나를 다독이러 가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된다.
겨울의 경북은 거창한 이벤트 대신, 사색과 휴식, 그리고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내세운다. 절벽 위 산사에서 시작해 도시의 해변, 레트로 박물관과 민간정원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천천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작고 사소한 여행의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번 겨울, 경북에서의 멈춤과 걸음 사이에서 나답게 숨 쉬는 법을 다시 떠올려 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