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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존성 평가 K기준…식약처, UN 가이드로 격상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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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의존성 평가 기술이 국제 규제 체계를 바꾸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축적한 동물행동시험 기반 평가법을 토대로 유엔마약범죄사무소와 함께 첫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신종마약 규제의 과학적 기준이 표준화되는 흐름이 시작됐다. 업계와 학계는 이번 조치가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와 같은 고위험 물질을 각국이 더 빠르고 일관성 있게 관리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UNODC와 공동연구를 통해 마약류 의존성 평가 국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지난 16일 이를 확정한 뒤 18일 전 세계 90여 개국에 국문·영문본을 동시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국제기구 차원에서 마약류 의존성 평가를 위한 공식 기술 기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식약처 산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그동안 운영해온 의존성 평가 지침을 모태로 했다. 식약처와 UNODC,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공동 연구를 진행해 시험 설계와 해석 기준을 정교화했고, 국내외 전문가 논의를 거쳐 국제적 요구와 국내 평가 기술을 반영한 표준안을 완성했다.  

 

기술적 핵심은 동물행동시험에 기반한 오피오이드계 약물 의존성 평가 체계다. 오피오이드는 모르핀, 헤로인, 옥시코돈, 펜타닐과 그 유사체, 니타젠 계열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 등 강력한 진통 및 환각 효과와 높은 중독성을 지닌 물질군을 말한다. 가이드라인은 이들 약물의 의존 잠재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실험동물의 종류, 시험 장비 구성, 시험 원리와 절차, 데이터 분석 방법, 결과 해석 시 유의점까지 단계별로 제시했다.  

 

특히 기존에는 국가별로 시험 설계와 판정 기준이 제각각이라 물질 간 의존성 비교와 규제 수준 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국제 가이드라인이 도입되면서 특정 물질이 기조 약물보다 의존성이 얼마나 높은지, 어떤 수치 이상이면 규제 강도를 높여야 할지에 대한 공통 언어가 마련된 셈이다. 신종 합성 오피오이드처럼 짧은 기간에 다양한 변종이 등장하는 영역에서 표준화된 동물행동시험 프로토콜은 대응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높일 도구로 평가된다.  

 

가이드라인의 활용 무대는 각국의 마약류 지정 및 재분류 절차다. 새로 발견된 약물이 치료 목적인지, 오락적 남용 위험이 큰지, 기존 통제 물질과 비교해 어느 수준의 의존성을 보이는지 등을 평가할 때 이번 가이드가 근거 역할을 하게 된다.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일관된 데이터 형식과 판정 기준을 사용할 수 있어 신종마약류를 마약류로 지정하거나 관리 등급을 조정하는 행정 과정이 효율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경쟁 구도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간 마약 의존성 평가 기술과 규제 기준은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개별 가이드나 학술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에 한국 주도로 제정된 UN 공식 가이드는 아시아 국가가 마약류 규제 과학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확보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UNODC가 해당 기준을 채택한 만큼, 향후 다른 국제기구나 각국 규제 기관의 후속 지침에도 유사 구조가 반영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식약처와 UNODC의 협력은 2022년 11월 협력의향서 체결, 2023년 9월 업무협약을 거치며 제도화됐다. 연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국이 개발한 동물시험 모델과 분석 알고리즘을 국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UNODC가 각국 수요와 법제 차이를 조율하는 방식으로 공동 설계가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KIST가 기술 검토와 평가 기준 정립을 맡았다.  

 

마약류 규제는 각국 형법과 보건 정책에 깊이 연결돼 있어 글로벌 단일 기준 마련이 쉽지 않은 영역으로 꼽힌다. 이번 합의는 적어도 과학적 평가 기법과 데이터 해석 틀만큼은 공통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규제 강도와 처벌 수위는 국가별로 달라도, 위험성 판단을 위한 실험과 수치 해석만큼은 같은 잣대를 쓰자는 방향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규제 과학 측면에서 보면, 동물행동시험을 통한 의존성 평가는 신약 개발과도 맞닿아 있다. 진통제나 중추신경계 작용 약물을 개발하는 제약사는 이번 가이드를 활용해 후보물질 단계에서부터 의존성 리스크를 국제 기준에 맞춰 검증할 수 있게 됐다. 의존성이 낮은 새로운 진통제 개발 경쟁이 심화될 경우, 환자 치료와 남용 방지 사이에서 더 나은 균형점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규제 환경에서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UN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각국의 마약류 관리법, 약사법, 관련 시행령 개정 논의에 참고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 내에서는 식약처가 신종물질을 임시 마약류로 지정하거나 정식 분류를 확정할 때 이번 국제 기준을 근거로 삼아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동물실험 윤리, 데이터 신뢰성 검증, 시험실 품질 관리 등 후속 제도 정비도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국제 가이드라인 제정을 계기로 한국이 마약류 규제 분야에서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규범 설계자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상록 KIST 원장 역시 국제사회가 활용할 과학적 기반 구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히며, 연구기관 주도의 규제 과학 역량 강화 의지를 드러냈다.  

 

식약처는 내년 각성제 계열 약물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국제 가이드라인 개발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암페타민류 등 각성제는 오피오이드와 작용 기전과 부작용 양상이 달라 별도 평가 체계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마약류 의존성 평가의 범위가 오피오이드 중심에서 자극제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글로벌 마약 대응 전략의 과학적 기반이 한층 두꺼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와 규제기관은 한국이 주도한 이번 국제 표준이 실제 각국 규제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 국제 협력이 맞물리며 마약류 평가 체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과학과 윤리, 공중보건과 산업 간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향후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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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unodc#k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