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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바이오 데이터 플랫폼 확대…정부, 식의약 규제과학도 고도화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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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이 바이오 산업과 식의약 안전관리 패러다임을 동시에 바꾸는 촉매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파편적으로 쌓여온 생명연구자원 데이터와 바이오 소재 정보를 AI로 분석해 숨은 유망 소재를 찾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핵심 소재의 국산화를 앞당기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같은 맥락에서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영역에서도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해 요인을 사전에 예측하고 차단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히면서, 업계에서는 규제과학 경쟁력까지 AI가 좌우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23일부터 30일까지 제4회 심의회의를 서면으로 열고 제4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기본계획과 제1차 식품의약품 규제과학혁신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는 과학기술 중장기 정책과 국가 연구개발 제도 개선, 예산 배분 방향 등을 결정하는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로, 이번에 확정된 두 계획은 향후 5년간 국내 바이오 데이터 생태계와 식의약 규제체계의 밑그림이 된다.  

제4차 국가생명연구자원 관리활용 기본계획은 생명연구자원의 확보와 관리, 활용을 규정한 관련 법에 근거해 수립되는 5개년 계획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포함한 12개 부처와 청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생명연구자원은 바이오 데이터와 바이오 소재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의되며, 그동안은 확보와 보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정책 방향을 공유와 활용 중심으로 전환하고, AI 바이오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와 소재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제시했다.  

 

새 계획은 숨어있는 바이오 소재의 확보와 산업적 활용 활성화, AI 기반 바이오 데이터의 확보·관리·활용 강화, AI 바이오 혁신을 지원하는 민관 협력 체계 공고화라는 세 가지 전략을 축으로 한다. 여기에 10대 중점 추진 과제를 더해 2030년까지 공유·활용이 촉진되는 생명연구자원 선순환 체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특히 이번 전략은 기존에 산학연 기관별로 흩어져 있던 데이터와 소재 정보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민간 수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정부는 AI를 활용한 유용 바이오 소재 발굴과 신소재 개발에 속도를 낸다. 유전자·단백질·세포 자원, 미생물 균주 등 다양한 생명연구자원 정보를 AI로 분석해 이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후보 소재를 찾아내고, 산업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형태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시에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핵심 바이오 소재의 단계별 국산화 로드맵을 추진하고 해외거점센터를 통해 안정적인 소재 확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권역별 핵심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기업 수요에 맞춰 지역 기반 유용 소재와 첨단 연구시설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바이오소재 특화 산업 육성도 병행해, 지역 혁신 클러스터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데이터 측면에서는 국가바이오데이터통합플랫폼 K BDS를 중심으로 공공과 민간에 흩어진 바이오 데이터를 통합한다.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 공공기관, 민간 기업에서 생산된 데이터를 K BDS와 연계하고 데이터 재생산을 통해 2030년까지 700만 건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관리계획 제출 의무화와 품질선도센터 확대를 통해 데이터의 정확도와 재사용성을 높이고, 연구자와 기업이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 관리 체계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민감한 인체유래물 데이터 등은 고도의 보안이 확보된 분석 환경에서만 처리되도록 별도 인프라를 구축한다. 정부는 바이오 AI 특화 모델 개발이 가능한 통합 분석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바이오 전용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확충하고, 여러 부처와 기관이 공동으로 생산하는 대규모 데이터 셋인 이른바 범부처 매머드 셋을 구축할 예정이다. 인체유래물 기증 시 복수기관 제공 동의를 확대 적용하고, 쉽고 빠른 검색이 가능한 국가바이오데이터맵을 마련해 실제 연구 현장에서 데이터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AI 바이오 혁신을 뒷받침하는 민관 협력 체계 개편도 예고됐다. 정부는 가칭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를 통해 범부처 바이오 데이터 협업 구조를 재편하고,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해 데이터 허브 역할을 맡긴다는 구상이다. 바이오 연구와 산업 진흥, 의료 데이터 안전 활용을 위한 법적 기반을 정비하고, 의료 데이터 활용 편의를 높이는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감염병 같은 보건 위기 상황에 대비해 다기관 연계와 디지털 기반 대응 체계를 민관 협력으로 고도화하고, 글로벌 공동연구와 데이터 교류를 통해 국제 협력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 안건인 제1차 식품의약품 규제과학혁신 기본계획은 식품의약품 규제과학혁신법에 근거해 수립됐다. 목표는 규제과학에 기반한 식의약 안전관리 체계로 전환하고, 규제과학 혁신을 통해 국내 식의약 산업의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안전 관리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혁신 제품이 안전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네 가지 추진 전략과 중점 과제를 실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첫 번째 전략은 식의약 안전관리의 근간이 되는 분석 기술과 품질 평가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해 요인을 사전에 예측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의 사후 대응 중심 관리 체계를 예방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방향이 제시됐다. 동시에 AI 기반 의료제품 허가 심사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심사 과정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높이고, 필수 의료제품의 안정 공급을 위해 국내 제조 지원을 확대한다. 의약품 수급위험을 AI로 예측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환자의 치료 기회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두 번째로 정부는 혁신 식의약 제품 개발을 뒷받침하는 연구개발 성공률 제고에 집중한다. 범정부 협력을 통해 규제 정합성 컨설팅을 활성화하고, 신기술과 신개념이 적용된 혁신 제품이 시장에 조기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평가 기준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역량 심사자를 확충하고 허가 프로세스를 개선해 신약 허가 기간 단축을 지원하는 등 기업 입장에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병행된다.  

 

세 번째 전략은 국내 규제과학 기술의 국제적 위상 강화다. 정부는 해외 규제과학 선도기관과 공동연구와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해 역량을 키우고, 글로벌 규제 체계 형성 과정에서 국내 기준을 세계 표준으로 선점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 의제 논의에 적극 참여해 K 식의약 기준이 국제 규범으로 자리잡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국제 기준 변화를 국내 규제에 능동적으로 반영해 국내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지막 전략은 규제과학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첨단 혁신 제품 개발과 생산, 인허가 전 과정을 이해하는 규제과학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보건 안보와 산업 성장을 연계하는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규제 정책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기획과 관리, 성과 확산 체계도 정비할 계획이다. 식의약 분야 데이터를 활용해 위해 평가와 안전성 정보 검토가 가능한 데이터 기반을 강화해,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두 계획이 바이오와 식의약 분야에서 AI와 데이터 활용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데이터 품질 관리와 개인정보 보호, AI 분석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산업계는 AI와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실제 현장의 신약 개발, 소재 국산화, 식의약 제품화 속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규제과학 혁신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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