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결혼 데이터…디지털 헬스, 자립지원 새 과제
발달장애인의 결혼과 독립생활 수요가 높아지는 가운데, 의료와 복지를 잇는 헬스 IT 인프라의 공백이 산업·정책 양쪽의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임신·출산과 정신건강 관리, 일·가정 양립 지원에 이르기까지, 발달장애인 가정을 둘러싼 의료·복지 데이터는 대부분 분절된 상태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 돌봄 기술이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가족 단위 지원을 위한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보고, 관련 솔루션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의료 IT 업계는 모바일 기반의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기기,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을 중심으로 발달장애인의 일상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돌봄 부담을 줄이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행동 패턴과 수면, 심박수, 약 복용 이력을 통합 분석해 스트레스 증가나 우울 증상 가능성을 조기에 포착하고, 보호자와 의료진에게 동시에 알림을 보내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보호자의 ‘주관적 관찰’에 의존하던 영역을, 웨어러블과 앱을 통해 정량 데이터로 관리하는 구조로 바꾸려는 시도다.

특히 결혼 후 독립생활을 준비하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의료 접근성과 안전 관리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위치 기반 서비스와 약 복용 알람, 위험 상황 감지 알고리즘을 결합한 응급 대응 플랫폼이 대표 사례다. 일부 스타트업은 발달장애인의 생활 패턴을 학습한 AI 모델을 통해 평소와 다른 행동을 감지해 보호자와 콜센터에 동시에 알리고, 필요 시 지역 응급의료체계와 연동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기존 시설 중심 돌봄에서 지역·가정 단위 지원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이런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에 대한 수요도 커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정신건강과 직업·가정생활을 함께 지원하는 디지털 헬스 서비스가 이미 상용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폐 스펙트럼과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원격 상담, 인지행동치료 앱, 가상현실 기반 사회성 훈련 프로그램 등이 보험 체계에 편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에 가족 구성원 전체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평가하는 설문 도구, 재택 근무·유연 근무 정보를 연계한 일자리 매칭 플랫폼까지 묶어 하나의 생태계로 제공하려는 시도도 포착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발달장애인 대상 디지털 헬스케어가 주로 아동기·청소년기 재활 치료와 행동 관리에 집중돼 있다. 성인기, 특히 결혼과 양육 단계에 필요한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 내과, 재활의학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은 초기 단계에 머문 상태다. 의료 데이터는 병원별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복지 정보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나뉘어 저장돼 상호 연동이 어려운 구조라서다. 의료 AI 기업들이 병원 간 데이터 표준화와 상호운용성 확보에 힘을 쏟고 있지만, 발달장애인 특화 모델과 서비스로 확장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규제와 제도 역시 상용화의 문턱으로 남아 있다. 디지털 치료제와 원격 모니터링 기기가 식약처 의료기기 인허가 대상에 포함되면서 품질과 안전성은 강화됐지만, 발달장애인 특화 기능에 대한 별도 가이드라인은 아직 미비하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장애인복지법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데이터 활용 범위와 책임 주체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쟁점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 능력과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가족 대리 동의와 디지털 기기 사용 편의성을 제도 설계에 반영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발달장애인 부부와 가족을 하나의 ‘헬스케어 단위’로 보는 관점 전환이 IT·바이오 산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개인 중심 데이터에서 가구 단위 건강·복지 데이터로 범위를 넓혀야 AI 기반 예측과 맞춤 개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의료 AI 연구진은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면, 정신질환 악화나 만성질환 합병증 위험을 조기에 예측해 결혼과 육아를 포함한 삶의 선택지를 넓혀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디지털 헬스 플랫폼이 이런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