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2·3 계엄은 의회 폭거 맞선 계엄"…장동혁 사과 선긋기 속 국민의힘 내분 격화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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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둘러싼 갈등이 국민의힘 내부를 다시 갈라놓고 있다. 12·3 계엄 1년을 맞은 3일,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잇따라 대국민 사과에 나섰지만, 장동혁 대표가 계엄을 의회 폭거에 맞선 조치로 규정하며 선을 긋자 정면 충돌 양상이 뚜렷해졌다.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둘러싼 노선 갈등도 재부상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소속 의원 107명 가운데 약 40명만이 이날 계엄과 관련한 이른바 반성문에 동참했다. 계엄에 대한 책임 인식과 정치적 결별 수준을 두고 의원들 사이에서 입장차가 노골적으로 분출된 셈이다.

먼저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계엄의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그는 국민의힘 의원 전원을 대표해 고개를 숙였지만, 회견장에는 유상범 원내운영수석부대표, 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 등 원내대표단 일부만 동석했다.

 

소장파와 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초선·재선 의원 25명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보다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다. 이들은 대국민 사과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을 주도한 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단순한 반성 표명을 넘어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한 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해당 반성문은 재선 의원 주도의 공부 모임 대안과 책임이 초안을 마련한 뒤 이에 동의한 의원들의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4선 안철수 의원, 3선 김성원·송석준·신성범 의원, 재선 권영진·김형동·박정하·배준영·서범수·엄태영·이성권·조은희·최형두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초선 고동진·김용태·김재섭·박정훈·우재준·이상휘·정연욱 의원과 비례대표 초선 김건·김소희·유용원·안상훈·진종오 의원도 함께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개별 사과도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5선 권영세 의원은 페이스북에 "야당의 입법 독재와 폭주가 아무리 심각했다 해도 계엄 선포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깊이 반성한다"고 적었다. 서울 지역 재선 배현진 의원과 초선 한지아 의원도 각각 사과문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국민의힘에 합류한 조경태 의원은 광주를 찾아 윤 전 대통령 단죄 필요성을 언급하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12·3 계엄 당시 여당 대표였던 한동훈 전 대표도 이날 국회 담벼락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여당 대표로서 계엄을 예방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담장을 넘었던 장소를 다시 찾아 허리를 숙이며 책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당 대표인 장동혁 의원은 사과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며 다른 메시지를 냈다. 그는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적었지만, "12·3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고 주장했다. 계엄의 성격을 야당의 입법 폭주에 대응한 불가피한 조치로 규정한 셈이다.

 

장 대표의 발언을 두고 당내에서는 곧바로 "부적절한 메시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송 원내대표가 공식 사과를 낸 직후여서 지도부 간 인식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다만 장 대표의 기조에 동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원외인 김민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 글에 "공감한다"며 힘을 실었다.

 

이에 대해 친한계 박정훈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 대표가 사과를 거부한 상황에서 송 원내대표의 사과는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하면서 "장동혁 지도부가 지금 당원 다수의 마음을 대표하고 있는 게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당내 주류·비주류가 서로 다른 정치적 셈법을 드러낸 셈이다.

 

당 소속 의원 60명 이상은 이날 별도의 메시지를 내지 않고 침묵을 선택했다. 계엄 사과 수위와 윤 전 대통령과의 거리를 두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유보한 것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 구도와 맞물려 향후 선택지를 저울질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계엄 책임과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장기적인 노선 갈등에 빠져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수도권과 충청 등 중원에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민심이 관건인 만큼, 지지층 결집과 외연 확장 전략 사이에서 당내 대립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해서 여론이 좋지 않으면 의원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장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국회는 계엄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 절연 문제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의 균열이 재확인된 가운데, 향후 추가 입장 표명과 인적 정비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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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국민의힘#윤석열전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