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저수지 속 드럼통”…보이스피싱 일당, 강도살인에 무기징역
태국 파타야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살해한 뒤 시신을 드럼통에 숨긴 이른바 ‘파타야 드럼통 살인사건’의 피고인 3명에게 대법원이 모두 25년 이상 징역형을 확정했다. 해외에서 전화금융사기를 벌이다 수익이 줄자 일면식도 없는 동포를 상대로 강도살인까지 저지른 범행에 대해 사법부가 최고 수준의 책임을 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2부는 4일 강도살인과 시체손괴·은닉 등 혐의로 기소된 20~40대 남성 3명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주범에게 무기징역, 공범 2명에게 각각 징역 30년과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함께 선고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0년 명령도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강도살인의 고의와 인과관계, 공모 여부를 부인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 법칙을 벗어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고, 피고인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형량을 줄이려 한 시도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은 지난해 5월 3일 밤 태국 방콕의 한 클럽에서 시작됐다. 당시 태국에서 조직적으로 보이스피싱을 하던 피의자들은 금품을 빼앗을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클럽을 찾았고, 그곳에서 30대 중반 한국인 관광객을 범행 상대로 골랐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카카오톡 공개 채팅방에서 여행 정보를 올리는 것처럼 꾸며 한국인 관광객을 접촉한 뒤, 현장에서 술에 수면제를 타 마시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들은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피해자를 차량에 태워 파타야 인근 숙박시설로 이동했다. 이동 과정에서 피해자가 동선에 의문을 품고 저항하자, 목을 조르고 상체를 심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이 애초부터 금품을 빼앗기 위해 피해자를 제압할 계획이 있었고, 폭행 과정에서 사망 위험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고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살해 이후 범행은 시신 훼손과 은닉으로 이어졌다.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해 대형 고무통과 플라스틱 통에 나눠 넣고, 시멘트를 부어 봉인한 뒤 파타야 인근 저수지에 유기했다. 수사 과정에서 손가락을 절단해 신원을 감추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소지하고 있던 피해자 휴대전화로 계좌에서 수백만 원을 이체해 챙긴 뒤,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가장해 유족에게 연락해 1억 원을 요구하며 협박을 계속한 사실도 확인됐다.
1·2심 재판부는 범행 전 과정이 사전에 치밀하게 공모된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했다. 해외에서 보이스피싱으로 수익을 올리던 중 수입이 줄자, ‘쉽고 빠른 돈’을 노리고 불특정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강도살인이라는 더 강도 높은 범죄로 옮겨 간 점을 특히 중하게 봤다. 피해자와 피고인들 사이에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점, 단지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여행지에서 표적이 됐다는 점도 양형에 반영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해외에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강력 범죄에 대해 국내 사법부가 실질적인 최고형에 가까운 처벌을 내린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납치, 살인, 시신 훼손, 유족 협박이 하나의 범죄 연쇄로 이어진 점, 전 과정에서 역할 분담과 공모가 인정된 점을 고려해 “사실상 사회와의 영구적 단절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번 사건은 해외 취업 사기나 전화금융사기 조직에 연루된 한국인들이 강력 범죄로까지 범행 수위를 높일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동시에 해외 여행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조직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 해외 안전 대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고 있다.
중형 확정으로 형사 재판은 마무리됐지만, 해외 범죄 조직에 가담한 한국인에 대한 수사·차단 대책과, 해외에서 우리 국민을 겨냥한 강력 범죄에 대응하는 제도 개선 논의는 이어질 전망이다. 법조계와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외 보이스피싱과 연계된 강력 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