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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발 메모리 슈퍼사이클…한신평, 내년 반도체 신용전망 상향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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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확산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 구조를 바꾸며 산업 전반의 신용도가 개선되는 흐름으로 해석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도입이 동시에 확산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와 서버용 디램, 기업용 SSD까지 수요가 동반 확대되는 구도다. 공급 측에서는 대형 업체들의 신규 팹 가동 시점이 2027년 이후에 집중돼 있어 내년까지는 공급 여력이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수급 구조가 수익성과 재무지표를 뒷받침하며 메모리 중심 반도체 업황의 회복을 본격화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17일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망을 통해 내년 메모리 수요가 전방위로 확대되는 가운데, 낮은 증설 여력으로 고대역폭메모리와 범용 메모리 모두에서 타이트한 수급이 나타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신용평가는 2025년 메모리 반도체 산업 전망을 우호적, 관련 기업들의 신용 전망을 긍정적으로 제시했다. 신용평가사의 긍정적 평가는 영업이익 회복과 현금창출력 개선,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을 감안한 재무 안정성 관리 가능성에 무게를 둔 판단으로 풀이된다.

수요 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축은 인공지능 학습과 추론용 인프라다. 김 수석연구원은 인공지능 학습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 처리량이 큰 고대역폭메모리 중심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동시에 인공지능 서버 보급 확대로 고용량 서버용 디램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PC, 엣지 디바이스에 인공지능 기능을 직접 올리는 온디바이스 인공지능 확산으로 기기당 메모리 탑재량이 커지는 추세가 맞물리면서, 모바일과 PC용 범용 메모리 수요도 구조적으로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제품 믹스 측면에서도 변화가 관측된다. 인공지능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에서 요구하는 제품은 기존 범용 디램 대비 단가와 마진이 높은 고부가 제품이 중심이다. 김 연구원은 강력한 인공지능 수요로 고대역폭메모리뿐만 아니라 일반 서버 디램과 기업용 SSD 수요가 동반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 과정에서 고부가 제품 비중이 높아져 메모리 업체들의 이익 창출력이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용 SSD는 데이터센터의 스토리지 인프라 확충과 함께 용량당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제품군으로, 메모리 사이클 상향 구간에서 수익성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

 

공급 측에서는 대형 제조사들의 신규 팹 가동 시점이 지연되거나 중장기 계획에 묶여 있어, 단기간에 공격적인 증설로 수급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 점이 부각된다. 한국신용평가 분석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내년 모든 제품의 생산능력이 이미 매진된 상태에 가깝고, 2027년 2분기 용인클러스터 1기 팹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범용 제품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적이다. 이 시기까지는 기존 라인 내 공정 전환과 생산 효율 개선 외에는 눈에 띄는 증설 카드가 많지 않아, 특히 첨단 공정 기반 제품군에서 공급 여유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정리된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 역시 유사한 제약에 직면해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크론의 내년 고대역폭메모리 주문량은 이미 현재 생산능력을 넘어선 수준으로 파악된다. 미국 보이시에 건설 중인 신규 팹은 2027년 말에서 2028년 상반기에야 본격 가동이 가능해, 중단기적으로는 기존 설비 활용과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상위 메모리 업체 두 곳에서 동시에 증설 여력이 묶여 있는 구조는 내년 이후 몇 년간 메모리 수급을 공급자 우위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일정 부분 증산 여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평택 4기 팹에서 일부 추가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대역폭메모리 고객 확보 수준과 제품 전략에 따라 가용 생산능력이 고대역폭메모리 생산에 우선 배분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인공지능용 메모리 시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한정된 캐파를 고부가 제품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할 경우, 범용 디램 공급 확대 여지는 그만큼 제한된다. 이런 선택 역시 전반적인 메모리 수급 타이트 상황을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를 둘러싼 메모리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미국과 중국, 유럽 주요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대형 언어모델과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확대를 위해 GPU와 고대역폭메모리에 대한 선제적 장기 구매 계약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각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 인프라를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고성능 메모리 수요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신규 팹 완공과 첨단 공정 장비 확보에는 최소 수년이 필요해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용평가 관점에서 보면, 수요 강세와 공급 제약의 결합은 메모리 가격 회복과 수익성 개선을 통해 재무구조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대규모 설비 투자 계획과 기술 세대 전환에 따른 자본지출 부담은 지속되는 만큼, 업체별로 현금흐름 관리와 투자 속도 조절 능력이 신용도 차별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인공지능 특화 제품에 집중 투자하는 과정에서 비인공지능용 제품 라인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수요 변동 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 요소로 꼽힌다.

 

국내외 정책 환경 역시 변수로 남아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규제가 고성능 메모리 수출 제한으로 이어질 경우, 특정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큰 업체들의 매출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각국 정부의 보조금과 세제 지원은 장기적으로 팹 건설과 연구개발 투자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지만, 글로벌 차원의 설비 과잉을 유발할 소지도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업계에서는 결국 인공지능 호황에 따른 단기 수요 확대뿐 아니라, 국가별 정책과 공급망 전략이 맞물려 중장기 메모리 사이클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확산이 메모리 산업의 일시적 경기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 수요 확대 구간을 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투자와 기술 경쟁이 이어지는 만큼, 개별 기업의 재무 전략과 제품 포트폴리오 선택에 따라 신용도와 시장 지위가 갈릴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메모리 호황 기대가 실제 수익성과 재무 안정으로 이어지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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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용평가#sk하이닉스#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