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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은 통일부 소관"…정청래, 외교부·미국 의존 견제하며 자주성 부각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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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외교부와 통일부 간 갈등설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정면으로 마주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갈등설을 부인하면서도 통일부를 대북정책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고 못박으며 미국 의존적 의사결정 구조에 경고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한미 동맹과 남북 대화 사이 균형을 둘러싼 여권 내부 논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강원도 춘천시 민주당 강원도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부가 주도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통일부가 배제됐다는 논란을 언급했다. 정 대표는 "항간의 언론 보도 등에서는 대북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으로 보도됐는데 이는 진실이 아니다"라면서도 "문재인 정부 때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우려와 경고"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특히 과도한 대미 의존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사사건건 미국에 결재를 맡아 허락된 것만 실행에 옮기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면 오히려 남북 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꽁꽁 묶는 악조건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는 통일부의 방침을 지지한다.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과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고 거듭 힘을 실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운용했던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 경협·교류 사업을 둘러싼 대북 제재 면제 논의 창구로 가동됐지만, 미국 측의 신중 기조가 누적되며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민주당은 이번 외교부 주도의 한미 협의도 같은 구조로 흐를 소지가 있다고 보고 선제 차단에 나선 셈이다.

 

정 대표는 부처 간 역할 분담 원칙도 제시했다. 그는 "외교 정책은 외교부가, 통일정책·남북관계·한반도 평화는 통일부가, 국가안보·국방정책은 국방부가 맡아서 주도적으로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국방부가 하는 언어를 외교부가 쓰면 문제가 된다. 외교부가 쓰는 언어를 국방부가 쓰면 또 문제가 된다"고 덧붙이며, 대북 군사·외교 메시지 혼선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통일부의 역할을 재차 부각했다. 정 대표는 "통일부는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를 주 업무로 하고 있기에 이런 문제는 통일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게 맞다"고 했다. 외교부의 대미 협상 창구 역할은 인정하되, 한반도 평화 구상과 남북 대화 전략의 주도권은 통일부가 가져가야 한다는 구도다.

 

박지원 민주당 최고위원도 같은 회의에서 통일부 중심 체계를 제안했다. 박 최고위원은 "통일부가 주무 부처를 맡고 외교부가 대미 외교 지원을 담당하면서 대통령실과 NSC가 전략 조정을 맡는 체계가 국민께도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과 NSC가 콘트롤타워로서 이번 한미 협의체의 의제, 권한, 운영 구조를 분명히 해서 국민께 납득을 시켜 주시라"고 요구했다.

 

친명계 조직도 가세했다. 친이재명계 원외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는 논평에서 "국가 운영 체계상 남북관계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통일부가 주체적으로 추진하고, 외교부는 미국과의 협조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조직법과 헌법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교부가 대북정책의 전면에 나서 이를 주도하려는 행태는 명백한 월권"이라며 외교부를 강하게 겨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통일부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좋건 싫건 평화의 떡은 북쪽이랑 만들어야 한다. 한미간 발목부터 묶고 이인삼각 경주하려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북미 간 대화도 시작된 게 없는 상태에서 외교부가 대북정책 관련 공조부터 하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북·대미 정책 라인 재정비를 위해 당내 논의 기구도 새로 띄우기로 했다. 정 대표는 "한미 관계에서 자주성을 높이고, 남북 관계에서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에 조언하는 당내 특별기구"라며 한반도 평화 전략위원회 설치 방침을 알렸다. 이 위원회는 가칭 한반도 평화 전략위원회로, 한미 공조 구조 속에서도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독자적 공간을 넓히겠다는 구상에 따라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남북 관계, 한미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향후 한미 정상회담 의제, 남북 대화 재개 조건, 대북 제재와 인도적 지원 조율 방안 등 폭넓은 현안을 놓고 당의 공식 입장을 정리하는 창구가 될 전망이다.

 

한편 대통령실과 외교·안보 부처는 아직 구체적인 역할 조정 방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대북정책 주도 부처를 둘러싼 논쟁이 여권 내부 정치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통령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조정안을 마련해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는 향후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및 현안질의를 통해 각 부처의 역할과 책임을 놓고 추가 공방을 이어갈 계획이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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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더불어민주당#통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