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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치료 렌바티닙 우세”…분당차병원, 간세포암 생존 전략 제시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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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항암제 병용요법 이후 진행된 간세포암 환자의 2차 치료 전략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분당차병원 연구진이 실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표 표적치료제 렌바티닙과 소라페닙의 효과를 정면 비교한 결과, 두 약제 간 생존 혜택에 뚜렷한 격차가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간세포암에서 혈관내피 성장인자 수용체를 표적하는 약제가 대체로 비슷한 효능을 보일 것이라는 통념이 흔들리며, 향후 글로벌 치료 가이드라인과 신약 개발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차 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은 전홍재, 김정선 종양내과 교수 연구팀이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 병용 치료, 이른바 A+B 요법에 실패한 간세포암 환자를 대상으로 2차 치료제로 사용되는 렌바티닙과 소라페닙의 실제 효과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1일 공개했다. 이번 분석은 A+B 치료를 받은 1210명 가운데 적절한 추적과 데이터가 확보된 230명을 선별해 진행해, 이 분야 세계 최대 규모의 실제 임상 데이터 기반 연구로 평가된다.  

간세포암은 전 세계 암 관련 사망 원인 상위권을 차지하는 치명적인 악성 종양이다. 국내에서도 5년 상대생존율이 39.4%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진행성 간세포암 환자의 경우 예후가 매우 불량하다고 알려져 있다. 면역항암제인 아테졸리주맙과 항혈관신생제 베바시주맙을 함께 사용하는 A+B 1차 병용요법 도입 이후 환자 생존 기간이 크게 늘었지만, 일정 시점 이후 상당수에서 질환이 다시 진행되는 것이 임상 현장의 현실이다.  

 

문제는 A+B 이후 어떤 약을 2차 치료로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 진료에서는 다양한 티로신키나제 억제제, 이른바 TKI가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혈관내피 성장인자 수용체 VEGFR를 표적으로 하는 약제들은 효능이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가 오랫동안 깔려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약제별 반응과 안전성에 차이가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면서 이 가정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2018년 5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A+B 요법을 받은 간세포암 환자 1210명 중, 이후 2차 치료로 렌바티닙 또는 소라페닙을 투여받은 230명을 추려 분석에 포함했다. 이 가운데 125명은 렌바티닙, 105명은 소라페닙을 2차 치료로 사용했다. 환자 연령, 간 기능, 종양 부담 등 두 치료군 사이의 기저 특성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향점수 매칭 PSM 통계 기법을 적용해, 관찰 연구 특유의 편향을 줄였다.  

 

분석 결과는 간명했다. A+B 병용요법 이후 2차 치료로 렌바티닙을 투여한 환자들은 소라페닙 투여군보다 무진행 생존기간과 전체 생존기간 모두에서 유의하게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렌바티닙 투여군의 무진행 생존기간 PFS 중앙값은 5.5개월, 전체 생존기간 OS 중앙값은 11.9개월로 나타났다. 소라페닙 투여군은 PFS 2.6개월, OS 7.4개월에 그쳤다.  

 

1차 A+B 치료 시작 시점을 기준으로 한 전체 생존기간을 비교했을 때도 격차는 더욱 뚜렷했다. 렌바티닙군은 22.4개월, 소라페닙군은 14.3개월로 집계됐다. 이는 동일한 진료 환경에서 치료 순서만 달리해도 환자의 전체 생존 기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향점수 매칭을 통해 두 군의 임상적 특성을 통계적으로 맞춘 뒤에도 같은 경향이 유지돼 결과의 신뢰도를 높였다.  

 

면역항암제에 초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환자군에 대한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1차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에서 반응을 얻지 못한 환자는 이후 치료에서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이 같은 불리한 환자 집단에서도 렌바티닙 투여군이 소라페닙 대비 질환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비율이 유의하게 높았다. 이는 면역항암제 반응성과 무관하게 2차 치료 선택이 환자 예후에 미치는 영향을 부각시키는 대목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VEGFR 표적치료제 간 효과가 대체로 비슷하다는 기존 통념을 뒤집는 근거라고 평가했다. 약물의 분자 표적이 유사하더라도, 약동학 특성, 신호전달 경로 억제 강도, 부수 표적 범위 등에 따라 실제 항암 효과와 내약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데이터로 확인된 셈이다. 면역항암제 병용요법 이후 치료 전략 세분화와 맞춤형 약제 선택의 필요성도 함께 부각된다.  

 

간세포암 치료 시장에서는 최근 10년간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를 결합한 다양한 조합 요법이 개발되며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B 요법 외에도 다른 면역항암제 병용조합이 승인돼 사용되고 있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서도 로컬 제약사의 유사 전략이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2차, 3차 치료 라인에 어떤 약제를 배치하느냐가 제약사의 상업적 성과와 환자의 생존율 모두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간세포암은 대부분 간경변, 만성 B형 또는 C형 간염 등 기저 간질환을 동반해 약제 선택이 쉽지 않다. 간 기능 저하와 부작용 위험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렌바티닙과 소라페닙 모두 다중 티로신키나제 억제제로 VEGFR를 비롯해 여러 성장 인자 수용체를 표적하지만, 실제 진료에서는 용량 조절, 이상반응 관리, 환자 순응도 등 실무적인 요소가 치료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이번 연구가 실제 임상 환경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했다는 점이 현장 적용 가능성을 높여주는 이유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간세포암 진료지침은 A+B 1차 치료 이후 2차 약제 선택에 대해 상대적으로 폭넓은 옵션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왔다.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 부족해 명확한 우선순위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규모 실제 임상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향후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렌바티닙을 우선 고려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권고 수준이 조정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홍재 종양내과 교수는 관찰 연구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과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다국적 대규모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실제 진료 상황을 반영한 치료 순서 선택 근거를 제시했다며, 간세포암 환자의 생존을 더 연장하고 표준 치료 전략을 정교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무작위 임상시험이 갖기 어려운 현실 세계 데이터의 강점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례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견연구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간담도 분야 국제 학술지 JHEP 리포트 최신호에 게재가 예정돼 있어, 해외 간암 전문가와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도 높아질 전망이다. 간세포암 치료제 조합과 순서 최적화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제시한 데이터 기반 근거가 향후 글로벌 임상 설계와 약제 포지셔닝 전략의 기준점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간암 치료 현장에서는 이번 결과를 계기로 A+B 이후 2차 TKI 선택 기준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자 개개인의 간 기능, 동반 질환, 이전 치료 반응성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 시퀀스 설계가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산업계는 렌바티닙의 우위를 입증한 이번 실제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후속 병용요법 개발과 적응증 확대 전략을 모색하는 한편, 소라페닙을 포함한 기존 약제는 차별화된 환자군 발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간세포암 치료 패러다임은 단일 약제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의 최적 조합과 투여 순서를 찾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흐름에 들어섰다. 이번 분당차병원 연구는 그 과정에서 VEGFR 표적치료제 간 실제 효능 차이를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 근거가 실제 치료 지침과 시장 전략에 어떻게 반영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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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차병원#렌바티닙#소라페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