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전공의 처단 충격 1년"…의협, 의료농단 책임 규명 촉구

박진우 기자
입력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의료계를 겨냥한 이른바 전공의 처단 포고령이 발표된 지 1년을 맞아 의료계가 다시 한 번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시 계엄 포고령이 의사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한 전례 없는 조치였다고 규정하며, 민주주의와 법치 원칙을 훼손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전 정권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 절차와 근거의 허점이 드러난 만큼, 계엄 포고령 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재조사와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의료계는 향후 정부가 디지털 헬스, 필수의료 확충, 바이오 인력 양성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을 배제한 일방적 결정이 반복될 경우 산업 전반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의사협회는 12월 3일 성명을 통해 비상계엄 사태 1년의 의미를 되짚었다. 의협은 당시 대통령이 직접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 포고령에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료진이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을 경우 계엄법에 따라 처단하겠다는 문구를 담은 점을 문제 삼았다. 단순한 업무 복귀 명령을 넘어 형사 처벌과 군사적 통제를 시사한 조치는 의료계에 극심한 공포와 불신을 남겼다는 평가다. 의협은 의료인을 처단 대상으로 적시한 행위가 헌법상 직업의 자유와 인권, 집회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협은 성명에서 당시 계엄 포고령이 의료인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필수의료 공백을 이유로 의료인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정책 갈등을 안보 이슈로 비약시켰고, 정책 비판 세력을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집단으로 묶어 탄압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런 방식이 공공의료 인프라와 의료 인력 정책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차단해,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권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의협은 전 정권이 계엄 사태로까지 내몰린 배경에 의료농단이 있었다고 규정했다. 특히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예로 들며, 과학적 근거와 의료 수요 분석 없이 정원 확대를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를 언급하며, 전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과정에서 정책 타당성과 근거가 현저히 부족했고 추진 과정 역시 일방적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지역별 인력 수급 전망, 전문과목별 수요 예측, 디지털 헬스와 AI 의학 발전 속도 등을 종합 검토한 설계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정책 추진 방식은 IT·바이오 융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의료 현장 흐름과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공지능 진단 보조 시스템,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 정밀의료 기반 암 치료 등 기술이 확산되면서 의료 인력 수요는 단순한 인원 확대가 아니라 역할 재설계와 직무 전환, 데이터 이해 역량 강화 쪽으로 구조가 바뀌고 있다. 의협은 이런 기술적 변화와 병원 현장의 실제 업무 구조를 분석하지 않은 채 단기간에 의대정원만 늘리려 한 것은 미래 의료체계 설계 측면에서 심각한 리스크였다고 본다.

 

의협은 국가 미래 의료체계를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을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한 데 대해 관용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무리한 정원 증원 정책에 동조해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다. 계엄 포고령 역시 단발성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취약한 정책 설계를 군사적 통제와 결합해 강행하려 했던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의협은 의사를 처단의 대상으로 적시한 계엄 포고령의 책임 소재와 결정 경위, 관련 유관 부처와 청와대, 군 당국의 역할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 바이오헬스 산업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AI 기반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기기 등은 국내에서도 점차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인허가를 받으며 상용화가 확대되고 있다. 이들 기술의 도입과 보상 체계 설계, 개인정보 활용 범위 등은 정부와 의료계, IT 기업이 긴밀히 조율해야 할 영역이다. 그러나 계엄 포고령과 같은 강경 조치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의료계는 규제 완화나 시범사업 확대에 대해서도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의료인력 정책과 디지털 헬스 전략을 결합하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원격의료와 AI 진단 기술을 필수의료 보완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재조정하고 교육과 훈련 체계를 손질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통적 의료 인력 확대 논쟁과 규제 완화 논쟁이 정치 갈등과 얽히며 구조적 설계 논의가 뒤로 밀려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협은 향후 정부가 의료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전 정권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전문가 집단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의 없이 수치 목표만 정해 놓고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또 다른 극단적 충돌과 산업 불확실성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의사와 병원, 연구기관을 위협하거나 탄압하는 방식의 갈등 해결은 의료 시스템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민주적 절차와 충분한 논의,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협의가 의료정책 설계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계엄 포고령 1년을 맞은 의료계는 당시 충격과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하면서, 향후 책임 규명과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비로소 디지털 헬스와 정밀의료, 바이오헬스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란이 단순한 과거사 정리가 아니라, 의료정책 결정 구조를 재설계하는 계기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대한의사협회#계엄포고령#의대정원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