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스마트공장 없인 한계”…K제약, 제조혁신 없인 선도국 어렵다
AI와 스마트공장을 앞세운 첨단 제조기술이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품질관리, 연속제조 공정 등으로 세계 수준의 생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발간한 제조혁신 정책보고서는 K제약이 선도국 반열로 도약하기 위한 조건으로 디지털 전환과 공정 혁신을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 개선과 국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제조 혁신 투자가 향후 글로벌 기술 격차를 벌리는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7일 K Pharma 제조혁신 전략을 주제로 한 제29호 정책보고서 KPBMA Brief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제조 현황과 혁신 사례, 정책 과제를 종합 정리했다. 원료의약품 수급부터 약가 관리 제도까지 제조 경쟁력에 직결되는 쟁점을 폭넓게 다루며, 디지털 기반 제조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 특별기고에서 박영준 의약품제조혁신학회장 겸 아주대학교 교수는 국내 제약산업이 전통적인 배치 생산 방식에 머물러서는 글로벌 선도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배치 생산은 일정량을 나눠 생산하는 방식으로 품질 변동성과 공정 비효율이 적지 않은데, 이를 상시 흐름 형태로 운영하는 연속제조와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는 AI와 빅데이터, 로봇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제조 역량 확보가 필수이며, 공정 모니터링과 품질 예측 시스템이 국제 규제 수준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고도화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책본부 PL은 협회 회원사 45개 기업, 61개 공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혁신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과 생산관리 솔루션 등 디지털 인프라는 상당 수준 구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형사와 중소형사 사이에 공정 데이터 활용과 자동화 수준에서 뚜렷한 격차가 확인됐다. 일부 기업은 설비와 정보시스템이 도입됐음에도, 서로 다른 시스템 간 연동이 미흡해 생산 데이터가 단절되는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가 꼽은 제조혁신의 주요 장애요인은 고가의 설비 투자비, 시스템 연계 난이도, 데이터·AI 인력 부족, 규제 불명확성 등으로 정리됐다. 특히 품질관리 기준과 밸리데이션 요구사항이 연속제조와 같은 신기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기반 QbD 품질고도화 전략을 도입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기대 수준과 평가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럼에도 단기적으로는 공장 자동화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로봇 공정 도입, 자동창고 시스템, 생산 실적 자동 수집 등 영역에서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가진 기업이 많았다. 반면 연속제조와 QbD 도입은 생산 규모, 품목 구조, 수출 비중 등 국내 산업 구조와 맞물려 도입 속도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제도적 가이드라인과 인허가 경험이 축적돼야 본격 확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PL은 제조와 품질 혁신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중장기 로드맵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공정 기술과 디지털 솔루션을 우선 지원할지, 어느 시점까지 글로벌 수준의 품질 시스템을 달성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제조와 품질 혁신 투자와 연계된 세제 지원 등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규제 당국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기업들이 신기술을 보다 예측 가능하게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시에 데이터·AI 기반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민관 협력과 우수 사례 확산을 통해 중소기업까지 혁신 파급효과가 미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글로벌 제약 강국들이 추진 중인 제조혁신 정책과 비교 분석도 포함했다. 미국과 유럽은 연속제조 가이드라인과 QbD 기반 인허가 사례를 빠르게 축적하며, 디지털 트윈과 공정 분석기술 통합을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제약공장 스마트화와 데이터 인프라 강화를 국가 차원의 과제로 삼고 있다. 협회는 이런 흐름과 비교할 때 K 제약바이오가 기술 인프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와 지원정책의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케이스스터디 파트에서는 국내 제조혁신 사례가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종근당 천안공장은 스마트공장 구축과 운영을 통해 생산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품질 이슈를 사전에 감지하는 체계를 구현한 사례로 제시됐다. 이연제약 충주공장은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바탕으로 생산 효율과 추적성을 높인 경험을 공유했다. 또 바이오의약품 제조혁신을 위해 MES 생산실행시스템이 어떤 전략적 역할을 하는지,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도 담겼다.
제약산업 제조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혁신 전략과 품질 분야 제언도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데이터 무결성과 공정 투명성 확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자기록·전자서명 체계,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는 원료 다변화와 생산 거점 분산 전략 등이 주요 과제로 지목됐다. 품질관리 영역에서는 실시간 방출 시험과 데이터 기반 위험 관리 등 선진화된 기법 도입 필요성이 언급됐다.
이슈진단 파트에서는 원료의약품 산업 동향과 지원 방안, 의약품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 제도 개정 방향, 연구개발 투자 지속을 위한 예측 가능한 약가관리 제도 구축, 제네릭 의약품과 개량신약 가치 재조명 등 정책·산업 이슈를 함께 다뤘다. 제조 혁신이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료 공급, 특허 제도, 약가 정책, 제네릭 생태계 등과 맞물려 산업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각한 구성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 제조혁신 논의가 디지털 기술과 규제·정책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첨단 제조기술 도입 속도와 함께 산업 구조와 제도 변화가 맞물려야 글로벌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향후 정부와 기업, 학계가 협력해 제조혁신이 실제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