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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말라리아제 유래 물질로 난소암 억제"...국내 연구진, 전이·재발 차단 기전 규명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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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암 재발과 복강 전이를 동시에 겨냥하는 새로운 분자 기전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확인됐다. 항말라리아제에서 유래한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이 난소암 줄기세포의 자가재생 능력과 항암제 내성, 혈관 신생을 복합적으로 억제하는 경로가 규명되면서 난소암 치료 전략의 판도가 달라질지 주목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고위험 부인암인 난소암에서 병용요법 중심의 정밀의료 패러다임을 여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희대병원에 따르면 권병수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은 숙명여자대학교 생명시스템학부의 김종민, 유경현 교수팀과 공동 연구를 통해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을 활용한 난소암 전이 및 재발 억제 기전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성과는 네이처 계열 국제 학술지인 Experimental and Molecular Medicine에 게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팀은 우선 체외 세포 배양 모델을 이용해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의 항암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 처리 시 종양 억제 인자로 알려진 마이크로 RNA miR 200b 발현이 유의하게 증가했다. 동시에 암줄기세포 특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줄기성 유전자 BMI 1과 혈관 생성 관련 핵심 인자인 VEGF A 발현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miR 200b는 세포의 분화와 상피간엽전이 조절에 관여하는 비부호화 RNA로, 발현 수준에 따라 암세포의 침윤성과 전이 능력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BMI 1은 암줄기세포의 자가재생과 약제 내성을 유지하는 전사 조절因자로, 난소암을 포함한 여러 고형암에서 고발현될수록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VEGF A는 종양 주변에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도록 유도해 종양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혈관 신생因자다.

 

연구팀은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이 miR 200b를 매개로 BMI 1과 VEGF A를 동시에 억제하는 분자 경로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특히 이번 결과는 난소암에서 암줄기세포 특성과 혈관 신생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겨냥함으로써 복강 내 전이와 재발 위험을 낮출 수 있는 기전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기존에는 항암제 내성과 복막 전이를 각각 별도의 표적으로 다루는 접근이 주를 이뤘다는 점에서 치료 전략 측면의 차별성이 부각된다.

 

동물 모델 기반의 전임상 실험에서도 유의미한 효능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복강 전이가 유도된 실험용 쥐 모델에서 난소암 표준 항암제인 카보플라틴과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을 단독 또는 병용 투여하는 비교 시험을 수행했다. 카보플라틴과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 병용군에서는 독성 증가나 체중 감소와 같은 전신 부작용 없이 종양의 크기와 개수, 복수 형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줄어들었다.

 

이 결과는 난소암 치료에서 기존 백금 기반 항암제에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을 추가하는 병용요법이 치료 반응률과 무재발 생존기간을 동시에 개선할 잠재력을 지녔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난소암 환자 다수가 초기 치료에는 반응하지만 일정 기간 후 재발하고, 재발 시에는 백금 내성이 급속히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용요법 기반의 새로운 전략은 환자 예후 개선에 직결될 수 있다.

 

특히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은 기존에 항말라리아제로 널리 사용돼 온 아르테미시닌 계열 약물의 유도체로, 인체 안전성에 관한 임상 경험과 독성 자료가 상당 부분 축적돼 있다. 완전히 새로운 화학물질 대비 독성 탐색과 초기 임상 개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에서 재창출 신약 전략의 모범 사례로 거론될 수 있는 지점이다. 제약업계 입장에서는 후보물질 발굴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도 고위험 암종을 겨냥한 파이프라인을 확장할 수 있는 포인트로도 읽힌다.

 

난소암 보조 치료제 또는 유지요법으로서의 활용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현재 난소암 치료는 수술과 함께 카보플라틴, 파클리탁셀 기반 항암요법, 일부 환자에서 PARP 억제제 등 표적 치료제가 사용된다. 여기에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을 더해 암줄기세포 집단을 선제적으로 줄이고, 혈관 신생을 차단해 잔존 종양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병용 전략이 유력한 개발 경로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기존 약물을 새로운 암종에 적용하는 약물 재창출과 병용요법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항고혈압제, 항우울제 등 다양한 기전의 약물이 종양 미세환경 조절과 면역 반응 강화 목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miRNA 조절 기전을 직접 겨냥하는 치료제와의 조합까지 고려하면 난소암을 포함한 부인암 치료 옵션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다만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의 난소암 적용은 아직 전임상 결과에 기반한 초기 단계다.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상, 2상 임상시험에서 독성 프로파일과 적정 용량, 병용 시 약물 상호작용, 반응 예측 바이오마커를 세밀하게 규명해야 한다. 특히 miR 200b 발현 수준, BMI 1과 VEGF A 발현 패턴에 따라 환자군을 세분화하는 정밀의료 설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규제 측면에서는 기존 허가 약물의 새로운 적응증 확대에 해당하는 만큼 전통적인 신약 개발 대비 임상 설계 유연성이 확보될 여지도 있다. 다만 난소암이 생존율이 낮고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중증 질환이라는 특성상, 환자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규제기관은 병용요법에서의 독성 시너지, 장기 복용 시 누적 독성에 특히 주목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병수 교수는 이번 성과에 대해 난소암 치료에서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혀온 항암제 내성과 복막 전이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이 항말라리아제에서 파생된 물질로 부작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인체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며 향후 임상 개발을 통해 실제 치료 옵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연구계에서는 miRNA 조절을 통해 암줄기세포 특성과 혈관 신생을 동시 조절하는 플랫폼형 기전이 다른 고형암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제약 산업 측면에서는 기존 약물의 재창출과 병용요법 중심의 파이프라인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임상 개발과 상용화의 문턱을 넘어, 고위험 난소암 환자의 생존율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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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수#경희대병원#디하이드로아르테미시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