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공룡도 CT로 스캔한다”…티라노 화석, 디지털 복원 확산

박진우 기자
입력

산업용 CT와 3D프린팅이 고생물학 연구와 전시 방식을 바꾸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학계 보고 12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가장 완전한 표본으로 꼽히는 티라노사우루스 수의 두개골을 디지털 데이터 기반 실물 크기 복원 모델로 공개했다. 항공우주급 대형 CT 스캐닝과 3차원 출력이 결합된 이번 시도는 공룡 화석을 물리적 유물에서 디지털·산업기술 결합 자산으로 확장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 현장에서는 정밀 계측과 해부학적 분석 효율이 높아지고, 대중 전시에서는 원본 훼손 없이 고품질 모형을 반복 제작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수는 공식 명칭 FMNH PR2081로, 1990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서 고생물학자 수 헨드릭슨이 발견했다. 통상 공룡 화석은 전체 골격의 20~30퍼센트만 확보돼도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지만, 수는 부피 기준 약 90퍼센트 이상의 뼈가 보존된 보기 드문 표본이다. 생전 추정 몸길이는 약 12점3미터, 골반 높이는 4미터 수준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가운데 가장 크고 완전한 개체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 360여개 골격 중 250여개 이상이 확보돼 티라노사우루스의 표준 해부학 모델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신 골격 구조뿐 아니라 성장 연령, 질병, 부상 이력 등 생애사 연구의 핵심 데이터가 되고 있다.  

수의 뼈 조직을 현미 구조까지 정밀 분석한 연구에서는 사망 당시 나이가 약 28~33세로 추정됐다. 이는 티라노사우루스 표본 가운데 가장 고령 개체에 속하며, 대형 수각류 공룡이 어느 시점부터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노화 징후를 보이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골격에 남은 손상과 회복 흔적은 공룡 생태 연구의 실마리가 된다. 오른쪽 어깨뼈 손상,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3개의 갈비뼈, 먹이와의 전투나 동족 간 충돌로 추정되는 팔 힘줄 손상, 왼쪽 종아리뼈에서 관찰된 중증 골수염 흔적 등은 장기간에 걸친 부상과 감염을 시사한다. 특히 비골로 추정되는 왼쪽 종아리뼈는 감염으로 정상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비대해진 상태였는데, 연구진은 수가 이런 상태에서도 수년간 생존했을 가능성에 주목해, 대형 포식자의 회복력과 생존 전략을 분석하고 있다.  

 

두개골에 뚫려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은 티라노사우루스 행동과 질병 연구를 촉발한 단서다. 과거에는 동족 간 교전 과정에서 생긴 이빨 자국으로 보는 해석이 우세했으나, 2009년 이후 연구에서는 트리코모나스 계열로 추정되는 원생동물 기생충 감염 흔적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오늘날 비둘기 등 조류에 감염되는 트리코모나스는 구강과 인두 내부에 염증과 종괴를 형성해 결국 먹이 섭취를 방해한다. 일부 고생물학자는 수의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 기생충 감염을 지목하면서, 염증으로 인해 먹이를 삼키기 어려워지는 과정이 비교적 장기간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정확한 사인 규명에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두개골 구멍과 그 주변 조직의 미세 구조 분석은 고대 병원체와 공룡의 면역 반응을 추정하는 디지털 병리 연구와도 연결되고 있다.  

 

수의 두개골은 티라노사우루스의 감각 능력과 사냥 전략을 재구성하는 핵심 데이터다. 일반 의료용 CT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크기와 밀도 때문에, 원본 분석에는 우주왕복선 및 로켓 부품 검사에 사용되는 산업용 대형 CT 스캐너가 동원됐다. 이 장비는 고에너지 X선을 이용해 두꺼운 금속 부품 내부 결함을 찾는 장비로, 수의 두개골 전체를 수백에서 수천 장의 단층 이미지로 분해 촬영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세 차원 볼륨 이미지를 재구성하고, 뇌와 신경, 혈관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역산했다. 그 결과 티라노사우루스의 후각을 담당하는 후구가 전체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는 이 종이 시각뿐 아니라 후각 중심의 추적형 포식자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오늘날 사냥개나 하이에나 수준을 능가하는 후각 민감도를 가졌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이어지며, 포식 행동 모델링에도 활용되고 있다.  

 

체중 추정 역시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크게 수정됐다. 1990년대 중반에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체적 추산 방식에 따라 5~7톤 수준으로 추정됐지만, 2011년 이후 레이저 스캐닝과 컴퓨터 기반 근골격 시뮬레이션이 도입되면서 최소 8점4톤에서 최대 14톤까지 무게 범위가 크게 상향 조정됐다. 연구진은 골격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근육과 연부 조직을 디지털로 입힌 뒤, 체성분과 무게 중심을 계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복부 갈비뼈로 불리는 가스트랄리아를 포함한 새로운 복원 모델이 적용되면서, 수는 이전보다 훨씬 두껍고 근육질인 체형을 갖춘 것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런 디지털 체중 추정은 특정 관절이 감당할 수 있는 하중, 보행과 질주 속도, 사냥 시 가해지는 물리적 힘을 관측하는 시뮬레이션 연구의 기반이 된다.  

 

수는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과학문화·콘텐츠 산업 측면에서도 높은 상징성을 갖고 있다. 199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836만 달러, 한화 약 120억원에 낙찰돼 당시 화석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이후 스탠과 에이펙스 등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됐지만 상징성과 대중 인지도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원본 화석은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이 소장 중이며, 실제 두개골 무게만 약 272킬로그램에 달한다. 화석화 과정에서 두개골 일부가 미세하게 변형되면서,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전시용 전신 골격에는 정밀 제작된 복제품 두개골이, 진본 두개골은 별도 전시 공간이 배치돼 있다. 원본 보존과 대중 전시를 분리하는 디지털 복제 전략이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이유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이 선보인 수 두개골 실물 크기 복원 모델 역시 첨단 산업용 CT와 디지털 제작 기술의 결합 결과다. 미국 측에서 보잉사의 로켓 부품 검사용 대형 CT 스캐너를 활용해 수의 두개골 전체를 정밀 스캔했고, 이 과정에서 수천 개의 단층 영상이 포함된 고해상도 데이터셋이 구축됐다. 지질박물관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삼차원 메쉬 모델을 정제하고, 미세 손상과 공극을 보정한 뒤 실물 크기 3D 출력용 파일로 변환했다. 이후 고강도 수지와 합성 재료를 사용해 두개골 모형을 제작하고, 실제 화석 표면 질감과 색조를 모사하는 도색 과정을 거쳐 전시용 모형을 완성했다. 디지털 복원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향후 국내 연구진이 수의 뇌 구조, 교합력, 근육 부착 부위 등을 독자적으로 분석하는 데도 활용될 전망이다.  

 

이러한 디지털 복원은 고생물학 연구를 넘어, IT·콘텐츠·교육 산업과도 결합 가능성이 크다. CT 기반 삼차원 데이터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관람객이 가상 공간에서 수의 두개골과 체내 구조를 임의 각도에서 관찰하는 체험형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 연구용 데이터와 전시용 모델을 분리해 관리함으로써, 원본 화석의 이동과 전시로 인한 파손 위험을 줄이고, 전 세계 박물관이 동일한 표준 데이터를 공유하는 디지털 공동 연구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공룡 표본과 인류 화석에 대해 고해상도 CT 기반 오픈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관련 인프라 구축 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지질박물관은 대전에서 내년 3월 29일까지 수 두개골 복원 모델을 포함한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관람객은 약 6700만 년 전 지구를 지배했던 최상위 포식자의 두개골을 실물 크기로 마주하면서, 공룡 연구에 접목된 산업용 CT와 디지털 복원 기술의 실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연구계와 산업계에서는 이번 전시가 고생물학, 의료영상, 항공우주용 CT 장비, 3D프린팅 등 이종 기술 간 협업을 촉진하고, 국내 디지털 자연사 데이터 구축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과 전시 모델이 학술적 성과를 넘어, 과학기술과 문화 콘텐츠를 잇는 융합 생태계로 확장될지 지켜보고 있다.

박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한국지질자원연구원#티라노사우루스수#지질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