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생산거점 세웠다”…셀트리온, 릴리 공장 인수로 CDMO도 가속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과 개발 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셀트리온이 미국 현지 생산 거점 확보로 글로벌 CDMO 사업 가속화에 나섰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신규 공장 건설 대신 가동 중인 대형 생산시설을 인수해 리스크를 줄이고, 미국 생물보안법 통과 이후 커지는 현지 CMO 수요까지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셀트리온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과 CDMO 확장 경쟁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31일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에 위치한 일라이릴리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를 최종 마무리했다고 2일 밝혔다. 동시에 일라이릴리로부터 약 6787억원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CMO 사업을 개시했다. 지난 7월 말 해당 설비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약 5개월 만의 딜 클로징이다.

이번에 인수한 생산시설은 약 4만5000평 규모 부지에 생산동과 물류창고, 기술지원동, 운영동 등 4개 건물이 모여 있는 대형 캠퍼스 형태다. 현재 기준 연간 약 6만6000리터 규모의 원료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 공장이며, 셀트리온은 인수 직후 증설 절차에 착수해 약 7000억원을 추가 투입, 생산능력을 13만2000리터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대형 항체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다.
셀트리온은 이 설비 인수에 약 3억3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일라이릴리와 맺은 위탁생산 계약에 따라 2029년까지 3년간 바이오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계약 기간을 최대 4년으로 설정했다. 회사 측은 시설 운영비 등을 제외하고도 CMO 매출만으로 인수 투자금을 수년 내 조기 회수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초기부터 안정적인 가동률과 매출을 확보하면서 생산시설 위험을 낮춘 셈이다.
특히 이번 인수는 신규 공장 설립과 비교해 시간과 리스크 측면에서 차별화된 접근으로 평가된다. 대형 바이오 공장을 새로 건설할 경우 부지 확보, 설계, 밸리데이션, 규제기관 인허가 절차 등을 거치면 최소 수년이 소요된다. 셀트리온은 이미 상업 생산과 규제 검증 경험을 쌓은 일라이릴리 공장을 그대로 넘겨받으면서, 즉시 생산이 가능한 인프라를 확보했다. 고용 승계 협의를 통해 기존 숙련 인력을 이어받았다는 점도 초기 가동 안정성과 품질 관리 측면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생산 거점의 미국 이전과 다변화는 공급망과 비용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셀트리온은 이번 인수를 통해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서 구조적으로 벗어나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 유럽, 미국으로 이어지는 다거점 생산 체계를 통해 특정 지역의 정치·경제 변수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직접 제조와 판매를 연계하면 물류비 절감과 리드타임 단축을 통해 원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 공장에서 일라이릴리 물량을 생산하는 CMO 사업과 동시에, 자사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의약품의 미국 상업 생산을 위한 밸리데이션 절차에도 돌입했다. 이 과정이 마무리되면 동일 시설에서 위탁생산과 자체 제품 양산이 병행되는 구조가 된다. 회사 측은 미국 생산시설에서 공백 없는 매출 창출과 가동률 확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 중심의 CDMO 경쟁이 치열해지는 추세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공급망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각종 정책을 강화하면서, 바이오텍과 다국적 제약사들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 내 생물보안법 통과로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어, 미국 현지에 설비를 보유한 CDMO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셀트리온도 이러한 정책 환경 변화를 사업 확대의 기회로 보고 있다. 미국 법인 셀트리온USA가 설비 투자와 운영을 전담하고, 자회사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가 글로벌 영업 및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맡는 분업 구조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 대상 CDMO 수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구상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미국 내 생물보안법 시행으로 글로벌 생명공학 기업들의 현지 CMO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인수로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의 이번 행보가 기존 바이오시밀러 중심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바이오의약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생산 설비와 공정 기술을 가진 기업의 CDMO 사업은 중장기 성장축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미국 내 인건비와 운영비 상승, 규제 강화 추세 속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설비를 운영하고 추가 수주를 확보하느냐가 실질적인 수익성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셀트리온의 미국 생산시설 인수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의미 있는 선제 투자라고 보면서도, 향후 CDMO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장기 계약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을 거점으로 한 생산과 수출이 안정 궤도에 오를 경우, 한국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CDMO 위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는 셀트리온의 미국 공장 인수가 단순 설비 확보를 넘어, 변화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실제 시장에 안착하는 CDMO 모델로 자리 잡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