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류 수식이 붓터치에?”…고흐, 과학계까지 흔든 별밤 논쟁
난류 연구가 예술 작품까지 파고들며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을 두고, 붓질 패턴이 실제 자연 난류의 통계 법칙을 반영하는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국제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고성능 컴퓨팅으로 이미지 데이터를 정량 분석하는 시도가 늘어나는 가운데, 예술 이미지를 물리 현상처럼 다뤄도 되는지에 대한 방법론 논쟁이 과학계 내부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최근 미국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2024년 중국과 프랑스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소개하며, 별이 빛나는 밤 속 붓질 패턴과 러시아 수학자 안드레이 콜모고로프가 제시한 난류 스케일링 법칙 사이의 유사성을 조명했다. 연구진은 고해상도 디지털 이미지 데이터를 확보한 뒤 그림에 등장하는 14개의 소용돌이 형태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픽셀 단위 밝기 변화를 공간 스케일별로 통계 처리했을 때, 콜모고로프 난류 이론에서 예측하는 에너지 분포 곡선과 비슷한 스케일링 거동이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핵심 쟁점은 작품의 회화적 패턴이 실제 유체역학 난류에서 관측되는 통계적 특징과 얼마나 구조적으로 겹치는가에 있다. 콜모고로프 난류 이론은 특정 규모의 유체 소용돌이가 더 작은 규모로 연속적으로 깨지며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이때 에너지 스펙트럼이 파동수에 대해 특정 지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고전 이론의 핵심이다. 연구진은 고흐 그림의 소용돌이에서도 유사한 지수적 스케일링 패턴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며, 예술적 붓질이 자연 난류의 ‘시각적 서명’을 무의식적으로 포착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연구팀은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분석 대신, 비교적 전통적인 통계 신호 처리 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픽셀 간 밝기 차이를 속도 차이에 대응시키는 가정 아래, 공간 상관함수와 파워 스펙트럼을 계산해 난류 모델과 비교하는 방식이다. 특히 여러 소용돌이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계산한 결과가 서로 유사한 스케일링 지수를 보였다는 점을 들어, 단순한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예술 이미지를 ‘데이터화’해 물리 법칙과 대조하는 대표적 시도로 평가받는 이유다.
하지만 유체역학 전공자들의 반론도 거세다. 미국 워싱턴대 제임스 라일리 교수 등은 회화 이미지를 실제 유체 흐름의 속도장처럼 취급하는 전제부터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난류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속도 벡터장이 존재하지만, 그림은 화가가 선택적으로 구성한 정지 이미지라는 점에서 물리적 동역학과 직접 대응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회화적 질감과 명암은 미학적 의도와 재료 특성, 당시 조명 조건 등 복합 요인의 결과이지, 물리적 난류를 계측한 데이터가 아니므로 동일한 통계 도구를 적용하는 것은 개념상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비교 대상의 확장 가능성을 거론하며 논문 전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상주의와 후반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짧고 반복적인 붓터치나 소용돌이 형태는, 프랙털 기법이나 반복 패턴을 적용했을 때 다양한 자연 현상과 비슷한 통계 구조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에드가 드가 등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도 자기유사성을 띤 패턴이 발견된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이 경우 모든 반복적 회화 패턴을 난류의 흔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통계 분석 자체가 과잉 해석인지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이에 대해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인 프랑수아 슈미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물리학자는 난류 법칙의 일부 특성이 예술 이미지에도 제한된 범위에서 관찰될 수 있음을 보이는 시도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작품을 실제 유체 흐름으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복잡계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통계 도구를 문화적 산물에 적용해 새로운 유형의 계량적 해석 가능성을 실험해 본 것이라고 설명한다. 함께 연구에 참여한 중국 연구진 역시 붓질의 밝기 변화에서 난류와 비슷한 통계 구조를 읽어낸 것이며, 예술의 가치를 물리 모델로 치환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강조한다.
제3의 관점도 등장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의 호세 루이스 아라곤 교수는 고흐의 그림을 실제 유체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픽셀 간 밝기 변화와 속도 변화를 가상적으로 대응시켜 난류의 본질적인 특징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사례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별이 빛나는 밤을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 난류의 역동성과 비선형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예술적 성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인다. 이 관점에서는 물리학의 통계 도구가 예술 표현을 계량적으로 묘사하는 보조 수단이 되며, 해석 대상의 중심은 여전히 회화에 남는다.
이미지 데이터 분석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면서,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기반 스타일 분석과 신경망을 활용한 이미지 분해 기술은 이미 미술사 연구에서 화풍 분류나 위작 감정에 활용되는 중이다. 여기에 난류나 복잡계 물리 모델을 접목해 작품 속 패턴을 정량적으로 비교하려는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통계적 유사성이 곧 자연 법칙의 반영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이나 규제 차원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쟁점은 크지 않지만, 학제 간 연구 윤리와 해석의 한계를 어디에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예술 작품을 데이터 세트로 단순 전환해 물리 모델에 맞춰 해석하는 방식은, 인문학적 맥락을 축소시키거나 창작 의도를 과학적 척도로 재단한다는 비판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학계 입장에서는 엄밀한 계측 데이터와 예술 이미지를 같은 수준의 증거로 취급할 경우, 물리 이론의 검증 구조가 흐려질 위험도 존재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논쟁이 과학이 정적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해석과 반론, 감정과 인간적 반응이 얽힌 과정이라는 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별이 빛나는 밤이 난류의 과학적 증거인지 여부는 여전히 결론 나지 않았다. 다만 디지털 이미지 분석과 통계 물리 도구가 예술 작품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흐름 속에서, 예술을 어디까지 과학의 언어로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층 선명해졌다. 산업계와 학계는 결국 해석의 폭과 한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지식 생태계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