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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노인 돌봄 본다”…디지털 윤리 교육, 세대갈등 완화 시험대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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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패딩을 입은 초등학생 무리가 지하상가에서 노인을 조롱하고 달아났다는 목격담이 확산되면서, 단순한 일탈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공감 능력 저하와 세대갈등 심화 문제를 어떻게 기술과 제도 안에서 풀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 이번 사건은 디지털 공간이 자극적인 조롱 문화에 익숙해진 어린이·청소년의 정서를 어떻게 바꾸고, AI·플랫폼 기술이 노인 보호와 세대 간 존중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경우 노인 돌봄과 정신 건강 케어 수요가 기술 기반 서비스로 급격히 쏠릴 수 있다고 보고, AI 윤리 교육과 디지털 시민성 교육을 결합한 새로운 정책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30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그맨 김영민 씨가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지하상가에서 목격한 장면을 전한 글이 공유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 씨는 매우 고급스러운 패딩을 입은 초등학생 무리가 연두색 배낭을 멘 노인을 향해 추격전을 벌이며 조롱했다고 적었다. 한 아이가 앞장서 도망가고, 다른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가서 잡으라며 부추겼고, 노인은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있던 청년들이 아이들을 제지하고, 경찰이 출동해 상황을 정리하면서 물리적 충돌 없이 끝났지만,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늙음이 조롱이 되는 사회”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건이 단발적 일탈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학습된 조롱·혐오 문화가 오프라인으로 전이되는 전형적인 패턴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각종 SNS와 영상 플랫폼 댓글, 짧은 형식의 콘텐츠에서 자주 소비되면서, 어린 이용자들이 이를 현실의 놀이로 모방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교육계에서는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혐오 표현과 디지털 폭력 사례를 다루는 수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플랫폼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맞물려 AI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노인의 신체·정신 건강을 보호하고, 세대 간 단절을 완화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추세다. 국내외에서는 노인 낙상 위험을 감지하는 컴퓨터 비전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우울감과 고립감을 완화하는 감성 대화형 인공지능, 인지기능 저하를 조기 포착하는 디지털 치료 앱 등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일부 솔루션은 가족과 돌봄 인력이 앱을 통해 노인의 상태를 실시간 공유하고, 이상 행동이 감지되면 즉시 알림을 보내는 기능을 제공한다. 거리에서의 위협 상황, 조롱이나 괴롭힘 등도 CCTV와 웨어러블 기기 데이터를 결합해 조기 탐지하는 기술 연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노인이 반복적으로 놀림과 괴롭힘에 노출될 경우, 심리적 스트레스와 대인관계 회피가 치매와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도 많다. 의료계는 고령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신 건강 관리를 포함한 통합 돌봄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병원과 스타트업들은 AI 기반 정서 분석, 음성 패턴을 이용한 우울 위험 예측, 뇌 건강 관리용 인지훈련 게임 등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고령층 맞춤으로 설계하는 중이다. 노인 당사자가 기술을 어렵게 느낀다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음성 인식 인터페이스와 대형 글자, 단순한 메뉴 구조를 적용하는 접근도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세대 존중과 노인 보호를 위한 기술·규제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유럽연합은 AI법을 통해 취약계층을 상대로 한 감정 조작형 알고리즘과 과도한 감시 기술을 고위험 분야로 분류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칙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돌봄 로봇, 원격 진료, 스마트홈 기반 노인 케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데이터 보호와 차별 방지 가이드라인을 병행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가 실제로 존엄성을 높이는지, 아니면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 되는지에 따라 기술 수용도가 갈리기 때문에, 사업자는 설계 단계부터 윤리 기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노인 돌봄 로봇, 치매 예방 디지털 치료기기, 지능형 응급 호출 시스템 등에 대한 실증사업이 진행 중이다. 다만 기술 보급 속도에 비해 세대 간 인식 개선, 디지털 시민성 교육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디지털 교육을 학교와 가정, 지자체 평생학습 프로그램으로 확장해, 노인 비하 표현의 문제성과 온라인 행동의 오프라인 영향까지 통합적으로 다루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부 지자체는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 가상 노인 체험 콘텐츠를 도입해 학생들이 고령자의 시야와 이동성, 불편을 간접 체험하도록 돕는 실험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도덕 담론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설계와 AI 윤리, 정밀한 노인 돌봄 기술이 함께 논의돼야 할 신호라고 보고 있다. 세대 간 존중을 뒷받침하는 것은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교육이라는 지적과 함께, AI와 디지털 헬스케어가 노인 혐오와 공감 결핍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산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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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윤리교육#세대갈등#ai노인돌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