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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전환해도 동일성 유지되면 산재보험료율 승계”…행심위, 근로복지공단 제동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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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료 부과를 둘러싸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근로복지공단이 맞붙었다.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전환한 뒤 기존보다 낮은 산재보험 개별실적요율 승계를 둘러싼 첫 판단으로, 향후 유사 분쟁의 기준이 될지 주목된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8일 충청남도 당진에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을 운영해온 사업자 A씨가 제기한 행정심판을 인용해, 근로복지공단이 내린 산재보험 개별실적요율 승계 신청 거부 처분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A씨는 1998년부터 개인사업자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을 운영하면서, 산재보험에서 일반요율보다 인하된 개별실적요율을 적용받아 왔다. 고용보험법에 따라 산재보험 신규 가입 시에는 업종별 일반요율이 적용되지만, 3년 경과 후에는 재해 발생 실적 등을 반영한 개별실적요율이 산정돼 보험료 부과 기준이 된다.

 

A씨는 2019년 11월 같은 사업을 법인 형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보험관계가 신규로 설정되면서 다시 일반요율이 적용됐고, 이후 A씨는 법인사업장에 대해 개인사업자 시절 적용되던 개별실적요율을 승계해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종전 보험관계를 소멸 처리한 뒤 법인사업장으로 새롭게 가입한 만큼 보험 가입자가 변경됐다며 승계를 거부했다. 공단은 개인과 법인은 법적 주체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승계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사업 실체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정면으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행심위는 결정문에서 해당 사업장이 종전과 동일한 근로자와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설과 재료를 사용해 동일한 내용의 제조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어 "사업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종전 개인사업자의 보험관계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 해당 업체에 승계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행심위는 사업자의 법인 전환을 형식상의 변경으로 보고, 사업의 인적·물적 요건이 동일하게 유지된 경우에는 산재보험 개별실적요율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자 유형 변경만을 이유로 승계를 막은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본 셈이다.

 

정책 현장에서는 법인 전환을 추진하는 영세·중소 사업장에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인건비와 더불어 고정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개인 시절 쌓아온 안전관리 실적이 법인 전환 후에도 보험료율에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이 이 결정에 어떻게 대응할지, 향후 행정실무 지침을 조정할지 여부에 따라 실제 영향력은 달라질 전망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단은 행정부 내부 기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이에 따라 유사한 형태로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사업장들이 산재보험료율 승계 신청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근로복지공단이 향후 내부 규정 정비나 추가 해석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산재보험료율 적용 기준을 둘러싼 논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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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행정심판위원회#근로복지공단#산재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