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가 감염 막는다”…국내 연구, B형간염 모자감염 차단 전략 제시
임신 기간 항바이러스제 투여와 출산 후 모유 수유가 신생아 B형간염 예방에 실질적 효과를 보였다는 대규모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예방접종과 면역글로불린 투여만으로는 남아 있던 모자감염을 추가로 줄일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된 만큼, 향후 국가 예방 전략과 WHO 퇴치 목표 달성 로드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B형간염 모자감염 관리 패러다임이 한 단계 진화하는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보건AI학과 교수 연구팀과 김종현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연구팀은 2002년부터 2021년까지 20년간 국내에서 출생한 신생아와 산모 15만4478쌍의 데이터를 분석해 B형간염 모자감염 역학과 위험 요인을 평가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에는 질병관리청이 운영해 온 주산기감염 예방사업 자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청구 데이터를 연계한 빅데이터가 활용됐다. 연구진은 표본 규모와 추적 기간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수준의 모자감염 분석이라고 강조했다.

B형간염은 B형간염 바이러스 HBV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간질환으로, 일반 감염자의 약 1~10%가 만성 보균 상태로 진행하는 데 비해, 산모로부터 감염된 신생아는 약 90%가 만성간염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간염은 시간이 지나며 간경변증과 간세포암으로 발전할 수 있고, 국내 간암의 약 70%가 B형간염에서 비롯된다. 간암은 특히 40대와 50대에서 주요 암 사망 원인으로 집계될 정도로 치명적이다.
1990년대 전 국민 B형간염 예방접종 프로그램이 본격 도입되면서 국내 B형간염 유병률은 크게 낮아졌다. 그럼에도 최근 10년간 약 3% 수준에 머물러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으로 평가된다. 영유아 예방접종률이 99%를 넘어선 우리나라에서는 성인 감염의 주요 경로가 수직 감염, 즉 모자감염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모-신생아 간 전파 차단이 사실상 B형간염 퇴치의 마지막 고리로 인식돼 왔다.
한국은 2002년부터 국가 주도 주산기감염 예방사업을 운영하며 B형간염 보균 산모가 낳은 신생아에게 출생 직후 예방접종과 함께 면역글로불린 HBIG을 투여해 왔다. 이 조합으로 모자감염률을 크게 낮췄지만,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고, 구체적인 잔여 감염의 원인과 추가 차단 전략에 대한 대규모 정량 분석은 부족했다.
연구팀이 20년간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전체 모자감염률은 2.3%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임신 중 항바이러스제 복용 여부, 수유 방식, 분만 방법이 주요 영향 요인으로 도출됐다. 임신 기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은 산모군의 모자감염률은 0.9%로, 약을 복용하지 않은 산모군의 2.4%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특히 전염성이 높은 B형간염 e항원 양성 산모의 경우 항바이러스제 복용 시 모자감염률이 5.9%에서 1.0%로 크게 떨어졌다.
연구진은 모유 수유와 분유 수유 간 차이도 확인했다. 모유 수유를 한 그룹의 신생아에서 모자감염률은 1.8%였고, 분유 수유 그룹에서는 2.8%로 더 높았다. 오랫동안 일부 현장에서는 모유를 통해 바이러스 전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지만, 대규모 빅데이터 분석 결과 모유 수유는 안전할 뿐 아니라 오히려 감염 예방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제시된 셈이다. 분만 방식에서는 제왕절개가 1.9%, 자연 분만이 2.6%로 나타나 제왕절개에서 감염률이 다소 낮았다.
연령대별 분석에서는 젊은 산모일수록 e항원 양성 비율이 높고, 항바이러스제 처방률과 모유 수유 비율은 낮은 경향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들 집단이 상대적으로 모자감염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향후 예방사업에서 연령별 맞춤 개입이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항바이러스제 사용 시기와 기간에 따른 차이도 조명됐다. 연구팀은 산모 HBV DNA 수치와 임신 기간별 투약 패턴을 분석해, 임신 2기인 14주에서 27주 사이, 늦어도 3기 초반인 28주에서 32주 사이에 항바이러스제를 시작해 출산 이후까지 유지하는 전략이 모자감염을 최소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05년 사이 모자감염률은 3.6% 수준이었지만, 2018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1.3%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항바이러스제 처방률은 0.3%에서 12.1%로 증가했으며, 연구진은 이 처방률 상승이 모자감염률 감소의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번 결과는 예방접종과 HBIG 투여 중심이던 기존 모자감염 관리 체계에 항바이러스제 기반 바이러스량 조절이라는 추가 축을 더해야 한다는 정책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WHO가 제시한 B형간염 퇴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위험 산모를 조기에 찾아내고 체계적으로 개입하는 정밀의료형 방역 전략이 요구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유럽, 동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HBV DNA 수치가 높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임신 후반기부터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 모자감염을 줄이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는 추세다. 다만 대상 선정 기준, 투여 시기, 보험 급여 범위 등에서 국가마다 차이가 크다. 이번 한국형 빅데이터 연구는 실제 대규모 인구 집단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제 가이드라인 업데이트에도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향후 국내 주산기감염 예방사업이 한 단계 진화하려면 모든 B형간염 보균 임산부에 대한 HBV DNA 검사 도입과 결과 기반 항바이러스제 처방, 모유 수유 적극 권고를 국가 사업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HBV DNA 검사는 혈액 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유전물질 양을 정량 측정하는 기술로, 감염력과 치료 필요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보듯, 바이러스량이 높은 산모에게 표준화된 기준으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면 남아 있는 모자감염을 추가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현 교수는 모든 B형간염 임산부에 대한 HBV DNA 검사와 이에 기반한 항바이러스제 처방, 그리고 모유 수유 권고를 국가 주산기감염 예방사업에 포함할 경우 국내 모자감염을 사실상 종식하고 WHO가 제시한 글로벌 B형간염 퇴치 목표 달성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모란 교수는 한국에서 B형간염 모자감염률이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WHO 퇴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임신 중 항바이러스제 복용을 포함한 보다 공격적인 국가 개입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과 국립암센터 공익적 암 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국가 감염병 관리와 공중보건 정책 수립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빅데이터 기반 연구로 평가된다. 의료계와 공공보건 당국은 향후 예방접종, 면역글로불린, 항바이러스제, 모유 수유 지원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한 정교한 모자감염 차단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