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엄 1년의 책임 누구에게 묻나”…김건희 결심공판, 내란 정국과 맞물린 법정 대치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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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과 불법 계엄 선포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 지점과 사법부 판단이 맞붙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결심공판이 내란·불법 계엄 선포 1년이 되는 날과 겹치면서, 재판정은 한 사람의 유무죄를 넘어 한국 정치와 사법 질서의 균열을 비추는 상징적 무대가 됐다.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법정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재판은 이날 오전 10시 10분 우인성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됐고, 남부구치소에서 이송된 김 여사가 피고인석에 앉아 절차를 지켜봤다. 내란과 불법 계엄 선포가 문제된 지난해 12월 3일로부터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김건희 / 연합뉴스
김건희 / 연합뉴스

법정 밖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른 오전부터 서울중앙지법 앞에는 주요 사건을 취재하는 방송사와 신문사 카메라가 줄지어 섰다. 생중계 화면에는 남부구치소를 출발하는 호송 차량과 함께, 김 여사가 법원에 도착해 부축을 받으며 법정으로 향하는 장면이 잇따라 잡혔다. 내란 우두머리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피고인들이 드나들던 출입로가 다시 한 번 정치권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날 결심공판은 표면적으로는 주가 조작과 통일교 관련 청탁 등 경제·청탁 사건에 대한 심리였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의 맥락을 따라가 보면 내란 사건과 궤도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내란 특검 수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핵심 국무위원, 군·정보 라인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된 가운데, 김 여사 사건은 특검 수사의 또 다른 끝자락에서 권력 사유화 의혹과 책임 문제를 드러내는 절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검이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건희 여사 사이의 문자 메시지 정황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힌 대목도 법정의 상징성을 키웠다. 구체적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다퉈질 사안이지만,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법무·사법 라인과 대통령 배우자 간 소통 정황이 거론되면서, 정치권에서는 권한 남용과 사법 개입 가능성까지 포괄한 책임론으로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 안팎의 장면은 이런 무게감을 시각적으로 응축했다. 사진 취재진에게 포착된 화면 속에서 김건희 여사는 변호인과 얼굴을 맞대고 결심공판 전략을 논의하는 모습이었다. 몇 분 뒤에는 같은 청사 복도에서 우인성 부장판사가 법정으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한편 복도 건너편에서는 내란 우두머리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다루는 형사합의부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군·정보 라인 인사들 사건의 향후 재판 일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정치권은 이날을 계엄 사태 1년의 정치적 분기점으로 규정하며 공세와 방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 성향 진보 세력은 12월 3일을 이른바 12.3 내란 저지 1년이라고 명명했다. 국회와 도심 일대에서는 현장 최고위원회의와 시민사회 대표단 간담회, 대규모 시민 대행진 등 맞물린 일정이 이어졌다. 여야 공방은 내란과 계엄 사태의 책임 소재뿐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포함한 전직 권력 핵심 인사들의 형사 책임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야권은 김건희 여사의 결심공판과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재판을 같은 축으로 묶어 정치적 책임을 부각하고 있다. 이들은 계엄 사태를 전직 정권의 헌정 질서 파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내란 특검과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내란 특검과 야권이 계엄과 무관한 개별 사건까지 한꺼번에 엮어 정치적 프레임을 씌운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사법 절차의 시간표는 12월 초를 기점으로 빠르게 좁혀지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은 내년 1월 초 피고인 신문과 검찰 구형, 최종 진술을 거쳐 결심공판을 마칠 계획이다. 재판부 안팎에선 내년 2월 전후 1심 선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당시 국무위원들도 각 재판부에서 내년 초 선고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결심공판까지 더해지면서, 서울중앙지법은 내란과 계엄, 권력 사유화 의혹이 뒤엉킨 책임 논쟁의 집약적 공간으로 부상했다. 한 인물의 양형을 논의하는 절차지만, 그 배경에는 전직 대통령 탄핵과 내란 수사, 특검 연장 여부, 사법 개혁 논의까지 여러 갈래 정치 현안이 겹쳐 놓여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결국 쟁점은 헌정 질서를 위협한 사건들에 대해 국가와 사법부가 어디까지, 누구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로 모인다. 정치적 유불리를 둘러싼 공방과 별개로, 계엄 사태와 관련된 결정들이 법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느냐에 따라 향후 권력 행사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의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대통령 배우자까지 형사 재판의 피고인석에 서게 된 상황은 권력 핵심부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내란 특검의 활동 종료 시점이 다가오는 가운데, 김건희 여사 사건을 포함한 일련의 재판은 한국 민주주의가 계엄 1년의 상처를 어떻게 정리할지 시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법원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관련 사건 심리를 통해 제도와 권력, 개인의 책임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 첫 번째 법적 답을 내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그 판단을 토대로 내란·계엄 방지 제도 보완과 책임 정치 구현 방안을 놓고 다시 한 번 정면 충돌 국면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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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윤석열전대통령#내란특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