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김없는진료전용고속도로"…삼성서울,환자경험새판연다
병원 내 진료에 그치지 않고 일상 생활과 지역 병원까지 한 번에 잇는 디지털 의료 기술이 대형병원 중심 의료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구축한 진료정보 연계 인프라는 환자가 어느 의료기관을 찾더라도 반복 검사와 진료 공백을 줄이고, 만성질환 관리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현실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를 디지털 기반 의료전달체계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4일 미국 보건의료정보관리시스템협회 HIMSS가 주관하는 의료 서비스 연속성 성숙도 모델 CCMM 6단계 인증을 세계 최초로 획득했다고 밝혔다. CCMM은 의료기관 간 진료 연속성을 측정하는 HIMSS 디지털 성숙도 모델 중 하나로, 병원과 병원, 병원과 환자 사이를 오가는 진료 정보의 연결성과 안전성, 실제 운영 수준을 종합 평가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미 다른 디지털 성숙도 모델에서도 상위 등급을 확보해온 가운데, CCMM까지 더해 HIMSS 전 영역 인증을 달성했다.

CCMM이 보는 핵심은 진료정보의 전용 고속도로 수준이다. 환자의 진료 기록, 영상, 검사 수치 등이 환자 동의에 따라 적시에 필요한 의료진에게 도달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안과 표준화가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를 정량적으로 검증한다. 이번 평가에서 HIMSS는 단순 시스템 유무가 아니라, 실제로 환자가 지역 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오가며 겪는 진료 여정을 따라가며 연속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진행된 심사에는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삼성서울유외과, 참든든내과, 서울삼성내과 등 지역 협력기관이 함께 참여했다. 심사단은 이들 1차·2차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진료 데이터가 삼성서울병원과 어떻게 실시간 연계되는지, 의뢰와 회송 과정이 전산화돼 있는지, 회송 이후 환자 추적 관리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집중 점검했다. 그 결과, 지역 협력기관과의 현실적인 연계 구조가 진료 연속성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적 기반은 삼성서울병원의 파트너즈 포털과 진료정보교류시스템 HIE, 심사평가원중계시스템 HIRA 연동 구조다. 파트너즈 포털은 협력 병의원 전용 디지털 관문 역할을 하며, 진료 의뢰와 회신, 영상·검사 결과 공유를 일괄 처리한다. HIE는 의료기관 간 전자의무기록을 표준 형식으로 주고받게 해주는 교환 플랫폼이고, HIRA 연계는 심사평가원의 데이터 중계를 활용해 보험 청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도 의료연속성 관리에 활용한다. HIMSS는 이 세 축을 통해 1차·2차·3차 의료기관을 잇는 양방향 전달체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점을 높은 점수로 평가했다.
이 같은 디지털 의료 전용망을 실제로 운영하는 조직이 삼성서울병원 파트너즈센터다. 이 센터는 지역 병의원이 환자를 삼성서울병원으로 의뢰할 때 필요한 임상 정보를 누락 없이 수집·공유하고, 상급병원 진료 이후 환자를 다시 지역 병원으로 회송할 때 필요한 요약 진료 정보와 향후 관리 계획을 함께 내려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환자 단위로 의뢰·회송 이력을 추적하면서 필요한 경우 추가 진료, 검사, 상담 연계를 이어가는 구조 덕분에 종이 의뢰서 기반 시스템에서 발생하던 정보 단절과 진료 공백이 줄어든다는 평가다.
HIMSS는 이러한 협력 체계를 환자 중심 디지털 헬스케어 운영의 모범 사례로 규정했다. 특히 의료기관 간 연결을 넘어, 환자의 일상 데이터까지 병원 시스템 안으로 안전하게 흡수해 통합 관리하는 구조를 갖춘 점을 핵심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단순 건강 앱 수준을 넘어선, 의료전달체계 인프라의 일부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삼성서울병원이 개발·운영 중인 포괄적 환자보고시스템 PRISM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PRISM은 환자의 전 여정을 관리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진료 전 문진과 설문, 진료 중 환자 상태 평가, 진료 후 경과 보고와 증상 변화 등을 환자 스스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입력하고, 이를 의료진이 한눈에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암 환자의 경우 수술 전후 증상, 통증 정도, 부작용 발생 여부, 생활 기능 변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면, 의료진은 외래 방문 간격 사이에도 상태 변화를 파악하고 조기 개입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웨어러블과 모바일 헬스 데이터의 병원 EMR 직접 연동도 CCMM 평가에서 차별화 요소가 됐다. 삼성서울병원은 연속혈당측정기 CGM와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 수집된 혈당, 심박, 수면 데이터가 환자 스마트폰 앱을 거쳐 병원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으로 자동 반영되도록 구현했다. 이를 통해 당뇨병 환자의 혈당 변동 패턴이나 심부전 환자의 활동량·수면 상태를 의료진이 실시간 또는 특정 주기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는 환자가 일일이 수치를 메모해 진료 시점에 전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자동 연동 체계는 데이터의 연속성과 정확도를 높이고, 비대면 모니터링 기반의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도 유리하다.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이미 웨어러블과 원격 모니터링을 활용한 만성질환 관리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의료기관은 심부전, 부정맥,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 대해 웨어러블을 의학적 모니터링 수단으로 처방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EMR과 연동하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다만 다수 기관이 파일 업로드나 별도 모니터링 플랫폼에 의존하는 수준에 그친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병원 EMR과 직접 연계해 진료 프로세스 안으로 녹여냈다는 점에서 구조적 차별화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의료 규제 환경에서는 의료정보 보호와 데이터 표준화가 항상 쟁점이다. 병원과 병원, 병원과 개인 기기 간 데이터 교류에서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준수는 필수 요건이다. 삼성서울병원은 HIE, HIRA 시스템과 연계하면서 환자 동의 기반의 정보 제공, 전송 구간 암호화, 역할별 접근권한 설정 등 다단계 보안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스마트워치·연속혈당측정기 연동 역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인 SaMD로 분류될 수 있는 영역인 만큼, 관련 법규와 인증 절차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작업이 병행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상용화의 또 다른 허들은 수가 체계와 보험 적용 문제다. 웨어러블 기반 모니터링과 디지털 문진, 원격 추적 관리는 환자 안전과 편의성 향상에 기여하지만, 현행 수가 체계에서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추가 노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HIMSS CCMM 같은 국제 인증이 향후 제도 설계와 수가 논의에 참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제기된다.
이풍렬 삼성서울병원 디지털혁신추진단장은 CCMM 6단계 인증은 단순한 기술력 검증을 넘어 실제 환자가 병원 안팎에서 끊김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 중심 디지털 헬스케어 체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국가와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해 더 나은 환자 경험과 의료 연속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대형병원이 중심이 된 상향식 의료전달체계가 만성질환 관리와 고령사회에 적합한 방향으로 재설계될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병원 간 경계를 허무는 인프라가 마련되더라도, 지역 기반 일차의료 강화와 수가·인력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HIMSS CCMM 인증을 계기로 환자 중심 디지털 의료체계가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