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한반도·평화공존·공동성장"…이재명, 대북 3대 구상 제시
정권 교체와 함께 대북 기조 전환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진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새로운 남북 관계 구상을 제시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 복원, 그리고 공동 성장을 축으로 한 청사진을 내놓으며 한반도 정세 재편을 향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 연설에서 "우리에게 놓인 시대적 과제는 새로운 남북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며 "남북이 대결과 적대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공존하며, 공동 성장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북 정책 방향으로 대결·적대 관계 종식, 평화 공존, 공동 성장을 제시했다. 그는 첫 번째 과제로 군사적 긴장 완화를 꼽으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없애기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걱정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가겠다"며 "핵 없는 한반도를 추구하며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 아울러 페이스 메이커로서 북미 대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전반에서 한반도 비핵화 방향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비핵화 의제 포기를 요구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출발점으로 삼아 핵 없는 한반도로 가는 과정에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두 번째 축으로 제시된 평화 공존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장기 중단 상태인 남북 대화 복원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그는 "7년째 중단된 남북대화를 되살리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허심탄회한 대화 재개를 위해 남북 간 연락 채널 복구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남북 대화가 유례없이 장기간 중단됐고 북측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내세우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남북대화 복원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세 번째 방향으로는 경제와 민생 협력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남북의 공동성장을 위한 협력도 추진하겠다"며 "적대로 인한 분단 비용을 평화에 기반한 성장 동력으로 바꾼다면 코리아 리스크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쪽의 양보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선순환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협력 분야로는 비군사·비제재 영역을 우선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기후환경, 재난 안전, 보건의료 등 세계적 관심사이자 남북 공동의 수요가 큰 교류 협력 사업부터 차근차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남북 경협이 주로 산업·인프라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인류 보편 의제와 실질 수요에 방점을 찍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통일 방식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재차 분명히 했다. 그는 "통일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이 돼야 한다"며 "일방이 일방을 흡수하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하는 통일은 통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흡수통일 포기 원칙을 재확인하며, 단계적·평화적 접근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연설 중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겨냥한 비판도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일부 정치세력은 분단을 빌미로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급기야 계엄을 위해 전쟁을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시도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쟁 종식과 분단 극복, 온전한 평화 정착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군사력과 동맹 역량을 언급하며 안보 불안을 과도하게 정치화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군사력 5위권의 군사 강국이자 한미동맹을 토대로 든든한 억지력을 갖춘 나라다. 유독 남북문제에서만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공동 성장하는 세상을 위해 국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는 새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 방향을 대내외에 동시에 알리는 장으로 활용됐다. 여권은 이 대통령 구상을 토대로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에서는 흡수통일 배제와 비핵화 표현 조정 등을 두고 안보 기조 후퇴인지, 현실적 조정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앞으로 남북 연락 채널 복구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기후·보건·재난안전 분야의 실무 협력 플랜을 구체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대북 정책 방향과 통일 전략을 둘러싸고 향후 정기국회와 각 상임위에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