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런 만난 국가유산 전시…데브시스터즈, K컬처 IP 융합 실험
게임 IP와 국가 유산이 결합한 융합 전시가 서울 도심에서 개막한다. 데브시스터즈가 자사 대표 게임 쿠키런을 앞세워 대한제국 황실의 유물과 디지털 콘텐츠를 한 공간에 배치하며, 민간 엔터테인먼트 IP가 공공 문화유산에 접점을 넓히는 시도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업이 게임 산업의 IP 비즈니스가 K컬처와 국가유산 영역으로 확장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데브시스터즈와 국가유산청은 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제 2회 국가유산의 날 기념 특별전 쿠키런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아서를 공동 개최한다. 전시는 자주적 근대국가를 지향했던 대한제국의 미완의 꿈과 쿠키런 세계관의 핵심 가치인 용기를 결합해, 사라졌거나 위기에 놓인 국가유산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쿠키런은 전 세계 누적 이용자 3억 명을 돌파한 국내 대표 게임 IP로, 데브시스터즈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사 게임 팬뿐 아니라 해외 이용자에게도 한국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적극 알린다는 전략이다. 자체 운영 채널과 글로벌 커뮤니티를 통해 전시 콘텐츠와 연계한 디지털 캠페인을 펼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팬 경험을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담겼다.
전시는 2023년 복원된 덕수궁 영빈관 돈덕전을 무대로 한다. 대한제국 황실의 실제 유물 40여 점과 더불어 쿠키런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해석한 상상화 3점, 국가무형유산 전승 취약 종목 보유자들과의 협업 작품 4점, 상상 속 대한제국 수도 서울을 표현한 미디어아트 등이 전시된다. 관람 동선은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 용감한 쿠키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구성해, 캐릭터 기반 내러티브를 입힌 것이 특징이다.
돈덕전 2층에는 쿠키런 상상화 시리즈 3점이 핵심 볼거리로 배치된다. 쿠키런 상상화 1 덕수궁 다시 피어난 황제의 꿈은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남아 있었을 덕수궁의 본래 모습과 고종황제가 구상했던 황궁을 당시 기록에 상상을 더해 복원했다. 쿠키런 상상화 2 칭경예식 새 시대를 열다는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끝내 진행되지 못한 대규모 국가 행사 칭경예식을 쿠키런 특유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성으로 담아낸 다섯 폭 병풍 형식 작품이다.
쿠키런 상상화 3 꺼지지 않을 희망의 빛은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고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이룬 상상의 서울을 그린 대작이다. 데브시스터즈 아티스트 20여 명이 참여해 게임 그래픽 제작 수준의 세밀한 묘사를 적용했고, 역사·건축 자료를 기반으로 가상의 도시 구조를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작품은 1층 전시 공간의 가로 27미터 LED 미디어아트와 연결돼, 정지 이미지에 움직임과 사운드를 더한 무빙 아트로 재탄생한다.
전통 기술 전승의 위기 상황을 반영한 콜라보레이션도 눈에 띈다. 전시에는 국가무형유산 장인들과 협업한 작품 4점이 함께 소개된다. 천년나무 쿠키의 윤도, 바람궁수 쿠키의 선자, 옥춘맛 쿠키의 매듭, 용감한 쿠키의 편경 등 캐릭터 설정을 전통 공예 소재와 연결해 현대 관람객에게 전통 기법과 도구를 친숙하게 소개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도가 장인 기반의 국가무형유산 보호와 대중 IP를 연결하는 새로운 후원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쿠키들과 함께하는 모험의 마지막 지점으로 설계된 단독 공간에서는 김영희 옥장이 손수 복원한 대한국새가 선보인다. 데브시스터즈는 유실된 대한국새의 복원 및 제작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국내 최초 복원품을 기증했다. 게임 기업이 단발성 협찬을 넘어 실제 유산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례로, 문화유산의 물리적 복원과 디지털 재현을 동시에 지원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전시 기획 측은 관람자 경험에도 디지털 요소를 강조했다. 쿠키런 캐릭터들의 목소리가 담긴 스토리텔링형 도슨트를 제공해, 어린 관람객과 해외 관광객도 서사를 따라가며 대한제국의 역사와 국가유산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정문인 대한문 안쪽의 덕수궁 문자도에서 시작해 돈덕전 1층과 2층 전관 약 250평을 활용한 동선을 구성해, 실제 유물과 게임 기반 상상 콘텐츠, 미디어아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도록 배치했다.
굿즈 기획도 전시 콘셉트와 맞췄다. 덕수궁 기프트샵에서는 우표 스티커 세트, 엽서 세트, 포스터, 아크릴 디오라마, 마그넷 등 한국 전통 문화 요소를 담은 자체 제작 쿠키런 굿즈를 판매한다. 온라인 쿠키런 스토어에서는 용감한 쿠키 대한국새와 자수 노리개 등 온라인 전용 상품을 선보인다. 핸드메이드 커머스 플랫폼 아이디어스와 협업해 댕기 키링, 매듭 팔찌, 자개 컵, 전통 무드등 등 29종의 상품을 출시해, 전통 공예 기반 작가 생태계와의 연결도 시도했다.
데브시스터즈와 국가유산청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양측은 2023년 국가유산 홍보 및 해외 유산 환수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한 뒤, 쿠키런과 연계한 도심 속 자연유산 체험 행사, 테마 지도 제작, 스탬프 투어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게임 IP를 활용해 젊은 세대와 해외 이용자를 대상으로 국가유산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는 데 주력해 온 셈이다.
문화·콘텐츠 업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게임 기반 캐릭터 IP가 미술 전시, 공예,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형식으로 환장되는 흐름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주요 관람층으로 삼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늘면서, 게임 그래픽과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체험형 전시는 향후 박물관 교육, 관광 상품, 글로벌 온라인 전시 등으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다만 공공 유산을 게임 IP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역사 왜곡이나 상업성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통 장인과의 협업을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로 연결하는 방안 역시 과제로 꼽힌다. 산업계와 문화유산 당국이 협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게임과 국가유산의 만남이 일회성 마케팅을 넘어 새로운 공공 파트너십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