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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불신 해소할 방향 찾겠다"…천대엽, 대법원 사법개혁 공청회 개막 선언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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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대법원이 마주섰다. 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대법원이 사법제도 개편을 주제로 한 대규모 공청회를 열며 각계 의견 수렴에 나섰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9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공청회를 시작했다. 행사는 11일까지 사흘간 이어지며 재판 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상고제도 개편, 대법관 증원안 등 쟁점들을 놓고 7개 세션 논의가 진행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개회사에서 국회를 중심으로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거세진 상황을 언급하며 사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사법제도 개혁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사회적 논쟁 속에서 사법부는 시대 변화를 깊이 인식하고 국민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또 주권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가장 필요하고 바람직하고 시급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해 3일에 걸친 공청회를 마련했다며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경청하고 건설적 비판과 제언을 폭넓게 수렴하는 열린 공론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천 처장은 한글 무늬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섰다. 그는 세종대왕이 시민들이 한자로 된 법을 읽지 못해 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뜻을 글로 적어 억울함을 풀 수 있게 하려는 염원으로 한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법 전통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국제 지표를 언급하며 우리 사법부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짚었다. 천 처장은 세계은행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실시한 사법부 평가에서 우리나라 사법부가 1위를 2차례, 2위를 2차례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고, 올해 지표에서도 전체 순위는 떨어졌지만 신속성 면에서 형사 분야 3위, 민사 분야 7위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천 처장은 많은 국민이 사법에 대한 높은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며 사법부가 여기에 대해 깊은 자성과 성찰을 하고 있고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청회에서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사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노력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법무부도 사법제도 논의에 보조를 맞추며 협력 의사를 드러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공청회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은 법무·검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사법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법무부도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함께 지혜를 모으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모든 제도는 시대와 환경을 반영해 변화한다며 그 변화 속에서도 제도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제도의 설계와 운용에 있어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선과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사법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원칙을 환기했다. 최봉경 한국법학교수회장(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은 축사에서 중립의 정신을 강조하며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또 그러한 방향으로 법이 규범력을 발휘하려면 사사로움을 덮고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렇게 돼야 국민에게 이로운 사법의 독립과 공정을 향한 문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공청회는 우리 재판의 현황과 문제점, 사법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 상고제도 개편 방안, 대법관 증원안 등 네 갈래의 핵심 의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사흘간 7개 세션에 걸쳐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 인사가 참여해 각 의제별로 발제와 토론을 이어간다. 보수와 진보 등 성향이 다른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함께 참여해 쟁점을 다각도로 짚을 예정이다. 김선수 전 대법관과 하태훈 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장(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논의를 지원한다.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2시간 동안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좌장은 진보 성향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으로 대법관을 지낸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맡았다. 토론에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박은정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전 국민권익위원장), 심석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조재연 전 대법관(성균관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 차병직 클라스한결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정치권에서 사법개혁 입법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법원이 마련한 이번 공청회 결과는 여야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법부와 법무부, 학계와 시민사회가 제시한 의견이 국회 논의 과정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따라 향후 사법개혁의 방향과 속도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공청회에서 제기된 쟁점과 제안을 토대로 다음 회기에서 관련 제도 개편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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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엽#대법원#사법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