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군사기밀 빼돌린 곳에 수의계약 말라"…이재명, 방사청에 KDDX 사업 견제 주문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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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 비리를 둘러싼 긴장과 청와대격 대통령실의 압박이 맞물리며 방산 사업이 정국의 새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을 둘러싼 조선업계 갈등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발언과 맞물리면서 파급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미팅 행사에서 방산·군수 비리 근절을 요구하는 참석자의 제안을 받고 방위사업청을 정면 겨냥했다. 이 대통령은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을 향해 "군사기밀을 빼돌려서 처벌받은 데다가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업명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이 추진 중인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이른바 KDDX 사업을 둘러싸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정면 대립하는 국면과 직결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정치권과 방산업계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18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의 최종 추진 방식을 확정할 예정이다.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설계 등 세 가지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그간 관례를 근거로 기본설계를 맡았던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맺는 방안을 우선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과거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문제 삼으며 강력 반발해 왔다. 한화오션은 해당 전력을 가진 업체에 대형 방산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경쟁입찰 또는 HD현대중공업과의 양사 공동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한화오션이 제기해 온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상기시키며 방사청의 기존 검토 방향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랐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발언의 파장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여권 일각에서는 방산·군수 비리에 대한 국민 여론을 의식해 청렴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야권 일각에서는 특정 업체 간 이해관계가 얽힌 대규모 사업을 두고 대통령이 방향성 신호를 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날 발언 취지가 방산 전반의 기강 확립에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방산업계는 KDDX 사업 결정 방식을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의계약으로 가면 HD현대중공업에 힘이 실리고, 경쟁입찰이나 공동설계로 틀이 바뀔 경우 한화오션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군사기밀을 빼돌려서 처벌받은' 전력을 거론하며 방사청에 "잘 체크하라"고 주문한 만큼, 방추위 심의 과정에서 관련 전력과 도덕성이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방위사업청은 예정된 일정에 따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사업 방식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과 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방사청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대형 방산 사업의 계약 관행과 심사 기준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방추위 논의 경과를 지켜본 뒤 방산 분야 전반에 대한 투명성 강화 방안을 추가로 검토할 계획이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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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방위사업청#한국형차기구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