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고찰서 셔틀 외교 재가동”...이재명·다카이치, 내달 한일 정상회담 조율
한일 관계를 둘러싼 협력 기조와 보수 외교 노선이 맞붙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내달 일본 나라시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두고 외교 당국 간 조율이 진행 중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마이니치신문은 11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내달 13∼14일께 나라현 나라시에서 양국 정상 회담과 만찬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날짜와 의제는 한일 외교 채널을 통해 계속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 장소로는 나라시의 대표적 고찰인 도다이지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도다이지는 나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대형 불상인 대불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이니치는 도다이지가 나라 시대에 조성됐으며 한반도 백제 출신 도래인과 깊은 관련을 지닌 사찰이라고 소개했다. 도래인은 과거 한반도와 중국 등지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과 문화를 전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나라현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출신지이자 지역구다. 나라시는 과거 일본 수도였으며 현재도 교토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고도로 꼽힌다. 마이니치는 두 정상이 도쿄가 아닌 지방 도시에서 만나는 형식에 대해 “지방에서 개최하는 것은 의례적 행사가 생략되기 때문에 친밀한 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 정상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장소 방문 가능성도 거론됐다. 신문은 양국 정상이 2022년 아베 전 총리가 유세 도중 피격돼 사망한 곳인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인근을 찾아 헌화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실제 일정 편성 여부는 경호와 국내 여론 등 복합적 고려가 필요해 막판까지 조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내 강경 보수 성향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아베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하며 안보 강화와 보수적 역사 인식을 토대로 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정상의 회동에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 중국 견제, 북한 대응 등 현안이 포괄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제기된다.
이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카이치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셔틀 외교 정신에 따라 다음에는 제가 일본을 방문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나라현으로 가자고 말씀드렸다. 본인도 아주 흔쾌히 좋아하셨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방문이 성사되면 이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찾게 된다.
마이니치는 또 “일본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이웃 나라인 한국과 협력을 확인해 양국 관계의 개선 기조를 유지하려 한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대중 관계 경색 속에서 한일 공조를 통해 외교 공간을 넓히려 한다는 분석이 담긴 대목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과 군사 정보 협력 복원 등 조치를 통해 한일 관계 관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역시 정권 교체와 내각 인사 변동에도 불구하고 안보·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한국과의 실무 협의를 지속해 왔다. 다만 과거사와 독도, 수출 규제 문제 등 잠재 갈등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정상 간 논의 과정에서 어떤 언급과 조율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외교가에서는 내달 나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셔틀 외교 복원 과정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미일 3각 협력 구도와 역내 안보 재편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일 정상 간 교류가 어느 수준까지 제도화될지에 따라 동북아 외교 지형에도 변동이 뒤따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구체 일정과 의제 조율이 마무리되는 대로 한일 정상 간 회담 방향을 공식 설명할 방침이다. 외교부는 나라 현지 개최 여부와 주요 현안 협의 범위를 포함해 향후 한일 관계 로드맵을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