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은 NSC·원자력은 외교부”…한미, 분야별 실무협의 본격 가동 시동
한미 원자력·조선·핵추진잠수함 협력을 둘러싼 기대와 경계가 교차하고 있다. 양국이 분야별 실무협의체 조속 가동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국 정부가 알리면서도, 미국 측 공식 문서에는 핵심 현안이 빠지면서 이행 의지를 둘러싼 외교전이 한층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외교부는 2일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양국 정상이 채택한 공동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분야별 실무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공동 팩트시트에는 원자력, 조선,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 협력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같은 날 배포한 자료에는 실무협의체 조속 가동 언급이 없었고, 원자력 협력과 핵잠 관련 표현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조선업 협력과 한미동맹 현대화가 강조돼 발표의 초점이 한국과는 다르게 잡혔다.
이에 따라 한미가 핵잠, 원자력 협력과 관련한 실무협의체를 얼마나 신속하게 출범시키는지가 미국 측의 구체적 이행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우선 미국과 협의할 국내 채널을 어떻게 구성할지 검토 중이다. 핵잠 건조, 원자력 협력, 조선 협력 모두 여러 부처와 민간 기업이 걸려 있어, 사안을 조율할 범정부 체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박윤주 차관은 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미국 측과의 실무 접촉 구상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 측에서 담당자를 지정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미국 측과 매칭해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 내 전담 태스크포스 구성이 공식화된 셈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연료봉 재처리 권한 확대를 포함하는 원자력 협력은 외교부 주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5년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당시에도 외교부 인사가 한국 측 대표로 나서 협상을 이끈 전례가 있다.
다만 2035년까지 효력이 유지되는 현행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다시 손질할지는 불투명하다. 협정 개정 여부에 따라 별도의 협상 대표가 다시 임명될지가 갈리는 만큼, 정부도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은 기존 협정을 유지하되 농축·재처리 필요가 있을 때마다 개별 승인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져, 실무협의 과정에서 양측 이견 조율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핵추진잠수함과 조선업 협력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해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와 대형 조선사 등 민간까지 폭넓게 엮인 사안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이른바 NSC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회에서 NSC 중심 추진 구상을 시사했다. 조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핵잠 문제는 국방부, 또 여러 민간 기관이 관련되기 때문에 NSC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모든 관련 부처가 여기 태스크포스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잠 사업 특성상 군사·산업·외교가 얽혀 있어 안보 컨트롤타워를 전면에 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군 안팎에서는 이미 사전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국방부와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로 구성된 준비팀이 꾸려져 범정부 태스크포스 출범에 대비하고 있다. 군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향후 한미 협의에 대비해 잠수함 설계, 원자로 안전성, 기술 이전 범위 등을 정리하는 작업이 내부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분야 협력도 NSC가 주요 채널로 거론된다. 한미 정상은 지난 10월 정상회담에서 양국 NSC 간 조선 협력 협의체 출범에 합의했으며, 외교부 안팎에서는 이 채널이 앞으로 조선 분야 실무협의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 조선사의 수주 경쟁력과 미국 해군의 함정 수요가 맞물려 있다는 점도 협력 동력으로 꼽힌다.
정부는 한미 실무협의체 구성이 늦어질 경우 국내 정치권과 여론에서 미국의 공동 약속 이행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실무협의체 조속 가동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 측이 조선업과 동맹 현대화에 방점을 찍는 등 메시지 간 온도 차가 계속될 경우 외교적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과 어떤 형태로 협의할지 전반적인 방향성에 공감한 상태”라며 “신속하고 충실하게 실무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조만간 부처별 태스크포스를 정식 가동하고 미국 측 담당자와의 채널을 확정한 뒤, 원자력·핵잠·조선 분야를 아우르는 단계별 협의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은 향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협상 경과를 점검하며, 한미 협의의 구체적 내용과 속도에 대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