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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몇 명이 적정선인가"…사법개혁 공청회서 8명 vs 12명 증원론 격돌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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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과 대법관 증원 논쟁이 정면 충돌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입법을 앞두고 대법원이 연 공청회에서 대법관을 몇 명까지 늘릴지, 또 하급심 강화와 어떤 균형을 잡을지를 두고 법조계 주요 인사들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9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3일차 공청회를 열고 사법개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여당이 내놓은 사법개혁 방안의 핵심 쟁점인 대법관 증원과 상고제 개편을 둘러싸고 토론이 집중됐다.

이날 공청회의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100분 토론에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 김선수 전 대법관, 조재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차병직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 한결·법률신문 편집인) 등이 참석해 각기 다른 증원 규모와 상고제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헌법재판관으로 근무했던 문형배 전 대행은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한 단계적 증원을 주장했다. 문 전 대행은 공청회에서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총 8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할 것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안 시행 1년 뒤 대법관 4명을 먼저 늘리고, 시행 3년 뒤 4명을 추가해 소부를 현행 3개에서 4개 체제로 개편하고, 연합부 2개와 상고심사부 1개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상고심사부가 상고 이유를 사전에 심사해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상고 불수리 결정을 내리면 본안에 회부되는 사건 수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문 전 대행은 "상고심사부에서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상고 불수리 결정으로 본안에 회부되는 사건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고,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에 따른 국민 불만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정치 일정과의 조화도 언급했다. 문 전 대행은 "3년 뒤면 총선을 한번 거친다"며 "총선을 통해 야당도 사법부 구성에 관여할 기회를 주는 게 제도의 수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해, 대법관 증원과 상고심사제 도입을 정치 일정과 연동해 추진하자는 견해를 내놨다.

 

반면 김선수 전 대법관은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 태스크포스가 제시한 대법관 12명 증원 방안에 힘을 실었다. 사법시험 27회 수석 합격자 출신으로 진보 성향 법조인으로 꼽혀 온 김 전 대법관은 참여정부 시기 사법개혁 작업을 이끌었고, 지난 6월 법률신문 기고에서는 대법관 증원이 하급심 강화라는 개혁 방향과 다소 어긋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대법관은 이날 토론에서 "대법관 입장에선 주심 사건 수가 절반으로 감소하므로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증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13명으로 구성되는) 연합부에서도 현재 전합보다 적극적으로 판례 변경 등을 통해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원 시기와 관련해서도 그는 민주당 안에 동조했다. 김 전 대법관은 향후 3년에 걸쳐 4명씩 증원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장기간에 걸쳐 증원하면 과도기적 상태 지속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22명의 대법관이 임명된다는 정치권의 문제 제기에 대해선 "(모든) 대통령이 평균 21.6명을 임명하게 돼 이는 평균적인 수치"라며 특정 정권의 영향력 확대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또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는 배치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대학생이 공적 자원 100을 대법관 증원을 통한 상고심 역량 강화와 하급심 강화에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묻자, 김 전 대법관은 "계량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면서도 "방향으로서 2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과거 입장과 달라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과거에 12명 증원안도 제시했는데 증원 반대 부분만 강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머지 토론자들은 대규모 증원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조재연 전 대법관은 상고제도 설계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시험 22회 수석 합격으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 전 대법관은 "심리불속행이든 상고 심사든 일정 방식으로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을 거르지 않으면 대법원의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전 대법관은 과거 상고허가제가 국민 반발로 좌초됐던 점을 언급하며, 현행 소송법 체계 안에서 상고이유서만으로 상고 사유 해당 여부를 본안 전에 심사하고, 상고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상고기각 결정을 내리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단기간 내 많은 대법관을 증원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대부분 전문가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대법관 증원을 한다면 4명, 1개 소부 정도 하면서 효과를 검토하고 단계적으로 논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급심 강화 필요성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거듭 강조했다. 서울대학교 로스쿨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재직했으며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박 전 위원장은 상고 제한 제도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전제가 하급심 신뢰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요국들이 상고 제한 제도를 두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선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가. 그 이유는 결국 하급심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전 위원장은 대법관 증원 필요성 자체는 인정했다. 그는 "대법관 수를 늘린다면 점진적으로 소부 1개에 해당하는, 상고심사부를 담당할 수 있는 정도로 우선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하급심 강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질적인 권리구제 효과에 대한 회의도 제기됐다. 법무법인 클라스 한결 소속 변호사이자 법률신문 편집인을 맡고 있는 차병직 변호사는 상고심 처리시간을 수치로 제시하며 증원 효과에 물음표를 달았다. 그는 "현재 상고심 사건 1건에 주어지는 시간이 55초인데 대법관 수를 2배로 늘리면 1분 50초로 늘어난다. 그러면 실질적인 합의나 심리가 가능해지느냐"며 "대법관 증원을 아무리 한다 해도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차 변호사는 이어 "상고제도, 대법관 수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본질적인지 상당히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상고심 부담을 줄이고 재판의 질을 높이려면, 숫자 조정보다 사건 배당 구조, 법률심과 사실심의 역할 분담 등 보다 구조적인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날 공청회에서 대법관 증원 규모를 두고 8명 단계 증원론과 12명 대규모 증원론이 맞섰고, 하급심 신뢰 회복과 상고사건 필터링 장치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교차했다. 여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 입법이 구체화될 경우, 대법관 증원 폭과 상고심사제 도입 방식, 하급심 인력과 예산 지원 방안 등을 두고 국회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대법원과 법조계가 제시한 의견을 토대로 사법제도 개편 방향을 본격 논의에 부칠 계획이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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