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전 정부 독점 끝낸다”…인도, 민간 개방 통해 2047년까지 100GW 확대 추진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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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5일, 인도(New Delhi) 연방의회에서 원자력 발전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되며 에너지 정책 전환이 본격화했다. 인도 연방정부는 그동안 유지해 온 원전 정부 독점 체제를 폐지하고 민간 기업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밝혀, 기후 변화 대응과 전력 수급 안정 전략에 중대한 변곡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장기 발전 로드맵과 맞물려 인도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구조 재편에 직결될 전망이다.

 

인도(India) 연방정부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주도로 원자력 발전 부문을 민간에 개방하는 법안을 15일(현지시간) 연방의회에 공식 제출했다. 법안의 핵심은 그동안 국영 기업에 한정돼 있던 원전 건설·운영 영역에 민간 기업의 참여를 허용해, 설비 확충 속도를 높이겠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법안에서 인도가 영국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지 100주년을 맞는 2047년까지 원자력 발전 설비 용량을 현재 8.8GW에서 100GW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인도, 원전 정부 독점 폐지 입법 추진…2047년까지 설비 100GW 확대 목표
인도, 원전 정부 독점 폐지 입법 추진…2047년까지 설비 100GW 확대 목표

인도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해 약 2천130억달러, 우리 돈으로 300조원을 훌쩍 넘는 투자 규모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모디 정부는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국가 비전을 내놓은 상태로, 원자력 발전 확대를 이를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 과제로 규정해 왔다. 이번 입법 추진은 에너지 전환과 성장 동력 확충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기후 변화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 흐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각국이 원전 활용 전략을 재조정하는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일본(Japan)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멈춰 세웠던 원전을 점진적으로 재가동 중이며, 영국(UK)과 중국(China) 등은 인공지능(AI) 기술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가로 급증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도 역시 이 같은 글로벌 흐름 속에서 자국 전력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한 셈이다.

 

인도의 이번 방향 전환은 1984년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에서 발생한 대형 가스누출 사고 이후 강화된 산업·환경 규제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 사고 이후 인도 정부는 산업 설비 공급업체와 운영업체 모두에게 사고 발생 시 광범위한 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책임 규제를 적용하는 국가로 꼽혔다. 이 제도는 화학·원전 등 고위험 산업 전반에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해 왔다.

 

엄격한 책임 규제는 해외 원전 기업의 인도 시장 진입을 사실상 가로막았다. 미국(USA) 제너럴일렉트릭(GE)는 인도 원전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코퍼레이션과 프랑스(France) 전력공사 EDF는 인도 내 사업 추진을 중단한 전력이 있다. 글로벌 사업자들은 사고 발생 시 부담해야 할 법적·재정적 리스크가 과도하다고 보고 인도 프로젝트에서 한발 물러선 상태였다.

 

인도는 1969년 첫 원자로를 가동한 이후 현재까지 전국에서 25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이다. 모든 상업용 원전은 국영 원전 기업인 인도원자력공사(NPCIL)가 일괄 운영하는 구조다. 정부가 원전 건설과 운영에서 민간 기업을 배제하면서 인도는 2032년까지 원자력 발전 설비 63GW를 확보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제때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입법이 구조적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법안 추진과 관련해 인도 국내 정치권의 저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원전산업 전문가들은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가 강하게 반대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인도국민회의는 집권 당시인 2008년 미국과 민수용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 인도가 발전용 핵 기술과 연료를 국제 시장에서 다시 수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 조치로 인도는 1974년 핵실험 이후 약 34년간 적용됐던 핵 기술·연료 수입 제한에서 벗어나 국제 원전 시장과의 연결을 회복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이번 입법이 원전 확대를 촉진해 방사성 폐기물 노출 위험과 잠재적 환경 피해를 키울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은 보팔 사고의 기억을 소환하며 규제 완화가 안전 기준 전반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안전성과 폐기물 처리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향후 인도 내에서 거세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 역학상 법안 통과 자체는 무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인도 연방정부의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 주도 정치연합이 연방 상·하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야당과 시민사회 반발에도 불구하고 입법 절차가 큰 지연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세부 시행령과 책임 규제 조정 방식, 민간 기업에 부과될 안전 의무 수준을 둘러싼 후속 논의가 치열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전력 구조 차원에서 인도는 중장기적으로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에 상당 부분 의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 설비가 계획대로 확대될 경우 전체 전력 믹스에서 화력발전 비중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전력 수요 급증과 온실가스 감축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서, 원전이 기저부하 전원을 담당하며 재생에너지 확산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원전 기술 보유국과 기업들의 인도 시장 재진입 시도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팔 사고 이후 형성된 강력한 책임 규제가 어느 수준까지 조정되는지, 민간 참여 확대 과정에서 안전·규제 체계를 어떻게 재설계하는지가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사다. 주요 외신들도 인도의 이번 행보를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온 정책 전환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향후 인도 원전 산업 개방이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협력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또 기후 대응과 경제 성장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국제 사회의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에너지 전환과 원전 활용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과 외교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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