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7퍼센트대 급증에도 소비 급랭…IT 회복, 경기 반등 제동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업황 회복이 11월 한국 전산업 생산을 다시 끌어올렸다. 다만 명절 특수 소멸과 기저효과 영향으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온도 차가 경기 회복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구도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반도체 사이클 개선과 건설 경기 반등이 설비투자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소비와 내수 출하가 동행지수를 끌어내리는 이중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11월 산업활동동향을 발표한 데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9퍼센트 증가해 10월 마이너스 2.7퍼센트에서 한 달 만에 반등했다. 전산업생산 증감률은 6월 1.6퍼센트, 7월 0.4퍼센트, 8월 마이너스 0.3퍼센트, 9월 1.3퍼센트, 10월 마이너스 2.7퍼센트로 출렁인 뒤 11월 다시 플러스권을 회복했다.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 생산은 전월 대비 0.6퍼센트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자동차 생산이 3.6퍼센트 줄어 조정을 받았으나 반도체가 7.5퍼센트, 전자부품이 5.0퍼센트 늘어나며 전체 생산을 끌어올렸다. IT 칩 생산이 두 자릿수에 근접하는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전자 부품 밸류체인 전반의 가동률도 동반 개선되는 흐름이다.
제조업 출하는 내수 출하 1.4퍼센트, 수출 출하 2.1퍼센트 동반 증가로 전월 대비 1.6퍼센트 늘었다. 제조업 재고 대비 출하 비율은 104.9퍼센트로 전달보다 1.1퍼센트포인트 낮아졌다. 재고가 출하에 비해 덜 쌓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IT 품목의 공급 조정이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70.9퍼센트로 0.1퍼센트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서비스업 생산은 0.7퍼센트 증가했다. 도소매가 1.6퍼센트 감소해 흔들렸지만 금융·보험이 2.2퍼센트, 협회·수리·개인이 11.1퍼센트 증가해 전체 지수를 지탱했다. 금리 수준이 여전히 높은 환경에서 금융·보험 부문의 활동이 확장된 것은 자산 운용과 위험 관리 수요가 동시에 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반면 11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3.3퍼센트 줄며 2024년 2월 마이너스 3.5퍼센트 이후 21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비내구재 판매가 4.3퍼센트, 의복 등 준내구재가 3.6퍼센트, 통신기기·컴퓨터 등 내구재가 0.6퍼센트 감소했다. 반도체와 전자부품 생산이 늘었음에도, 최종 소비 단계에서 IT 관련 내구재 수요가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업태별로는 승용차 및 연료소매점, 면세점, 편의점에서 판매가 증가했지만 슈퍼마켓 및 잡화점, 대형마트, 전문소매점, 무점포소매, 백화점 판매가 모두 감소했다. 코로나19 이후 성장해온 온라인·무점포 채널까지 동시에 위축된 점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효과가 10월에 집중된 데 따른 수요 당김 이후 조정과 함께 소비 심리 자체가 둔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통계심의관은 반도체 등 IT 업황 호조와 건설업 반등이 생산 회복을 이끌었다고 짚었다. 11월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5퍼센트 증가했다. 자동차 등 운송장비 투자가 6.5퍼센트 줄었지만, 일반산업용기계 등 기계류 투자가 5.0퍼센트 늘며 전체를 끌어올렸다. 반도체와 첨단 제조 설비 중심의 투자가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건설기성은 전월 대비 6.6퍼센트 증가했다. 토목 공사실적이 1.1퍼센트 감소한 반면, 건축 부문 공사실적이 9.6퍼센트 늘었다. 민간과 공공의 건축 프로젝트 집행이 하반기 들어 속도를 내면서 설비투자와 함께 실물경제의 하방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소매판매 급감에 대해 이 심의관은 10월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의 영향으로 소비가 급증한 데 따른 기저효과와 소비 시점 이동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율에 따라 수입 소비재와 해외 직구 관련 지출이 조정되는 흐름이 일부 확인되지만, 환율 영향의 정량적 파급을 현 시점에서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데이터처는 연간 기준으로는 소비 부진이 다소 완화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이 심의관은 최근 2∼3년간 이어진 하락 추세를 고려할 때 소매판매 지수가 크게 높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11월 누계 기준으로 0.4퍼센트 상승해 2025년 연간으로는 플러스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반도체와 IT 설비 투자 회복이 고용과 소득 경로를 통해 내수 소비를 지지할 여지도 남아 있다는 의미다.
경기 지표는 상반된 신호를 내고 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 대비 0.4포인트 하락해 2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내수 출하지수가 가장 큰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대로 향후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0.3포인트 상승했다. 반도체를 축으로 한 IT 수출과 설비투자의 개선이 향후 경기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잠재 요인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11월 데이터는 메모리 가격 회복과 AI 연산용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확대가 실제 생산 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IT 중심 수출과 내수 소비 간 괴리가 확대될 경우, 생산 회복이 체감 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심의관은 동행지수 저점 통과 시점과 관련해 2025년 1월을 기점으로 상승 전환이 이어질 수 있는지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만, 건설과 내수 출하지수 영향으로 반등이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와 IT 설비 투자가 선행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내수 소비와 건설 경기가 어느 수준에서 바닥을 다지느냐가 실물 경기 회복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생산과 투자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는 가운데 소비와 동행지수가 부진한 현재의 비대칭적 회복 패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가 향후 정책과 기업 전략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업황 회복이 실제 내수와 고용까지 확산돼 경기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