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코스코 지배권 없으면 승인 없다”…중국 요구에 파나마 운하 항만 매각 교착, 미중 갈등 확산 전망

오예린 기자
입력

현지시각 기준 16일, 미국(USA) 대형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이끄는 컨소시엄이 추진해온 파나마 운하 인근 항만 인수 거래가 중국(China) 당국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파나마(Panama) 운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돼 온 만큼, 이번 사안이 양국 간 해운·물류 패권 경쟁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블랙록 컨소시엄은 홍콩(Hong Kong) 기업 CK허치슨홀딩스로부터 파나마 운하 인근 항구 2곳을 포함한 전 세계 40여 개 항만 사업 지분을 228억달러 규모에 인수하기로 합의했지만, 협상 막판 중국 정부가 새로운 선결 조건을 제시하며 거래에 제동을 걸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국유 해운사인 중국원양해운(COSCO·코스코)이 인수 거래에서 지배 지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파나마 운하 항만 매각 228억달러 거래 제동…중국, ‘코스코’ 지배권 요구에 미·중 갈등 부각
파나마 운하 항만 매각 228억달러 거래 제동…중국, ‘코스코’ 지배권 요구에 미·중 갈등 부각

협상에 관여한 관계자들은 코스코의 지배 지분 확보 요구로 협상이 풀기 어려운 교착 상태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블랙록 측은 코스코가 인수 대상 자산에 동등한 지분을 가진 파트너로 참여하는 방안까지는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항만 운영권에 대한 과반수 지분과 거부권을 요구하는 중국 측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중국 정부가 파나마 운하 인근 항구들에 대한 통제권 문제를 미중 무역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앞서도 블랙록 컨소시엄과 CK허치슨 간 거래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며 국유 해운사 코스코가 동등한 자격을 갖춘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번에는 코스코의 지위와 권한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요구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거래 성사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갈등은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의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백악관 복귀 직후 파나마 운하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고 주장하며, 1999년 파나마 측에 이양된 운하 통제권을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약 한 달 뒤인 3월, 홍콩 재벌 리카싱 가문이 소유한 CK허치슨홀딩스가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 사업 부문 등을 블랙록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고, 당시 시장에서는 파나마 운하 인근 항만 운영권이 중국계 자본에서 미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구조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매각 결정에 일정 부분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 백악관은 최근 중국 측이 내건 코스코의 지배 지분 및 거부권 요구에 대해 부정적 기류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파나마 운하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물류 통로라는 점에서 관련 항만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해 왔다. 파나마 운하 내 발보아 항구와 크리스토발 항구에서는 매년 미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수백만 대가 하역과 선적 작업을 수행하고 있어, 통제권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양국 간 해운·항만 투자와 물류 흐름에 직접적인 변수를 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측은 코스코를 앞세워 해당 항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스코는 이미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 해운·항만 기업으로서, 그리스(Greece) 피레우스 항 등 주요 물류 거점을 확보해 온 만큼 파나마 운하 일대에서도 지분과 지배력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미중 무역·기술 갈등과 맞물려 핵심 물류 통로를 둘러싼 공급망 경쟁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거래 당사자인 CK허치슨과 코스코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블랙록 컨소시엄도 관련 질의에 답변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입장 표명이 지연되면서 시장에서는 협상이 장기화되거나 전면 재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1914년 개통된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해운·물류망에서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 왔다. 파나마 운하 인근 항만 지배 구조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단순한 자산 매각을 넘어 전략 물류 통로의 통제권을 둘러싼 패권 경쟁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거래가 어떤 형태로 결론 날지, 또 그 결과가 향후 글로벌 해상 운송과 공급망 재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예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중국#cosco#블랙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