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양자와 GPU를 한곳에”…SDT, 상업용 하이브리드로 양자 전환 속도

박진우 기자
입력

양자 컴퓨팅과 고전 컴퓨팅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기술이 국내 IT 인프라 산업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자 전문기업 SDT가 양자 기반 인공지능 기업 QAI와 손잡고 서울 도심 데이터센터에 상업용 양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면서다. 업계에서는 고전 슈퍼컴퓨터만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분자 시뮬레이션과 복잡 최적화 문제를 국내에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첫 산업용 거점이라는 점에서 양자 패권 경쟁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SDT는 30일 QAI와 계약을 맺고 국내 최초 상업용 양자 고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QAI는 양자 컴퓨팅과 엔비디아 초고성능 GPU 인프라를 데이터센터에서 통합 운영하는 전문기업으로, 이번 계약을 통해 서울 강남 데이터센터를 거점으로 내년 1분기부터 상업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양자 고전 하이브리드 컴퓨팅은 양자처리장치인 QPU와 CPU, GPU를 통합해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QPU가 양자 중첩과 얽힘을 활용해 난해한 조합 탐색과 확률적 연산을 처리하고, 고전 컴퓨팅 자원이 대규모 데이터 전처리와 후처리, 제어 로직을 담당하는 식이다. 특히 이번 시스템은 고전 컴퓨팅만으로는 계산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문제를 대상으로 설계돼,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10억년 이상 걸릴 수 있는 특정 분자 시뮬레이션 영역에서 성능 개선을 노린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SDT와 애니온테크놀로지가 공동 기술을 적용한 20큐비트 규모 풀스택 초전도체 양자 컴퓨터 크레오다. 큐비트는 양자 비트로, 0과 1을 동시에 표현해 병렬 연산 공간을 크게 넓힌다. 20큐비트는 아직 수백 큐비트 이상을 겨루는 글로벌 선도 연구에 비해 초기 단계지만, 실제 상업 데이터센터에 상시 운용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서는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엔비디아 DGX B200 GPU 서버가 결합돼 양자 시뮬레이션, 오류 정정 계산, AI 기반 모델링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  

 

애니온테크놀로지 양자 컴퓨터는 NVQ링크로 불리는 개방형 시스템 아키텍처를 통해 엔비디아 가속 컴퓨팅과 직접 통합된다. NVQ링크는 QPU가 GPU와 고속으로 연결돼 캘리브레이션, 오류 디코딩, 네트워크 라우팅 같은 고전 연산 집약 제어 작업을 GPU에 오프로딩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양자 제어 신호 계산과 실시간 보정 작업을 병렬화해 전체 시스템 처리량을 높이고, 양자 칩 자체는 핵심 양자 연산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고밀도 연산 인프라의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을 위해 SDT가 자체 개발한 액침 냉각 시스템 아쿠아랙도 함께 도입된다. 액침 냉각은 서버를 절연 냉각액에 직접 담가 열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공랭 대비 전력 효율을 크게 높이고 열 잡음에 민감한 양자 제어 장비와 GPU 시스템의 안정적 운용에 유리하다고 평가된다. SDT는 이번 공급을 통해 양자와 GPU를 아우르는 통합 액침 인프라 레퍼런스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서울 강남 청담동 QAI 데이터센터에 구축되는 양자 고전 하이브리드 인프라는 양자컴퓨터 저변 확대를 위한 파일럿 모델로 활용된다. 연구기관 전용 실험실 수준에 머물던 기존 양자 장비와 달리, 도심 데이터센터에 상주하는 상업용 시스템으로 설계해 금융, 제조, 물류, 신소재, 바이오 등 산업 고객이 실제 워크로드를 투입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한다는 구상이다.  

 

SDT는 내년 1월 하이브리드 양자 컴퓨팅 클라우드 서비스 큐레카를 공식 출시한다. 큐레카는 사용자의 작업 특성을 실시간 분석해 어떤 연산을 QPU에 보내고 어떤 부분을 GPU나 CPU에서 처리할지 자동으로 분배하는 자원 할당 기술을 탑재한다. 사용자는 별도 양자 전공 지식 없이 클라우드 콘솔에서 양자 컴퓨터와 양자 시뮬레이터를 선택해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설명이다.  

 

시장 측면에서는 시뮬레이션과 최적화, 신소재 개발, AI 모델 가속이 초기 타깃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분자 구조 탐색과 약물 후보 물질 선정, 공급망 경로 최적화, 배터리 소재의 전자 구조 계산, 초대형 AI 모델의 파라미터 최적화 등은 고전 방식으로는 계산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영역이다. SDT는 지자체와 협력해 바우처 형태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양자컴퓨팅 기반 접근을 시험하려는 수요 기업을 적극 발굴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이미 양자 하이브리드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IBM, 구글 등은 클라우드 기반 양자 서비스와 슈퍼컴퓨팅 연동 구조를 구축하고 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사 클라우드에서 여러 벤더의 QPU에 접속하는 하이브리드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연구 중심 시범 사업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이번 SDT와 QAI 협력은 상업 데이터센터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다는 점에서 후발주자가 현실적인 하이브리드 전략을 취한 사례로 평가된다.  

 

양자 컴퓨팅의 본격 상용화를 위해서는 규제와 표준, 보안 이슈도 남아 있다. 특히 양자 알고리즘을 포함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금융, 의료 등 규제 산업에 적용될 경우 계산 결과의 검증 가능성과 안정성, 데이터 보호 체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양자 하드웨어의 양산화를 기다리기보다, 하이브리드 구조에서 검증된 적용 사례를 쌓으며 표준과 제도를 병행 정비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세만 QAI 대표는 서울 도심에 상업용 양자 고전 하이브리드 인프라를 구축한 것은 기업들이 즉시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하며 2026년부터 실제 산업 수요 기반의 양자 컴퓨팅 활용 사례를 빠르게 만들고 강남 데이터센터와 유사한 도심형 양자 데이터센터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윤지원 SDT 대표는 이번 계약으로 국내 양자 컴퓨팅이 연구 단계를 넘어 산업 현장에 첫발을 내딛는 기점을 마련했다며 고전 컴퓨팅의 한계를 돌파하는 솔루션을 제공해 서울 도심에 구축되는 국내 최초 상업용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양자 기술 산업 활용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이번 인프라가 실제 기업 워크로드를 견디는지, 그리고 양자 기술 상용화 속도보다 산업 구조 전환이 더디지 않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sdt#qai#크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