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화재 조기탐지 상향”…데이터센터, 통신재난 기준 재편 예고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통신 인프라 전반의 재난관리 기준이 한 단계 높아진다. 특히 리튬배터리를 사용하는 대형 데이터센터에는 배터리관리시스템과 화재 조기탐지 설비가 사실상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정부는 배터리 화재를 데이터센터 운영의 핵심 리스크로 규정하고, 분리격실과 이격거리 같은 설비 구조 기준까지 도입해 통신시설 안전 규제를 하드웨어 수준으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전력 설비와 배터리실 구조 개선이 향후 데이터센터 투자와 입지 전략에도 영향을 줄 변수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일 2025년 2차 통신재난관리 심의위원회를 열고 2025년도 통신재난관리계획 이행점검 결과와 2026년도 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본계획에는 기간통신, 부가통신, 데이터센터 등 통신 인프라 3개 축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 방안이 일괄 반영됐다.

데이터센터 분야에서는 리튬배터리 화재 대비와 안정적 전력공급 체계를 중심으로 총 164개 항목이 점검 대상이다. 데이터센터 사업자 중에서는 전산실 바닥면적이 2만2500제곱미터 이상이거나 수전설비 용량이 40메가와트 이상이면서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인 시설이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는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35개였던 부적정 항목이 올해 8건으로 줄었다며, 각 사업자가 제출한 대안조치 방안이 전기·소방 전문가 검토를 거쳐 모두 적정하다고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본계획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배터리 안전 기준의 구체화다. 정부는 대형 데이터센터에 배터리 관리 시스템 설치와 화재 조기탐지 추가설비 구축을 요구했다. 배터리 관리 시스템은 리튬배터리의 온도, 전압, 전류 등을 실시간 감시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검출하는 장치로, 폭주 현상과 같은 열폭발을 사전에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조기 연기 감지와 국소 온도상승 탐지 장비를 추가해, 기존 연기감지기와 스프링클러 중심의 수동 대응 체계에서 보다 선제적인 탐지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리튬배터리실을 다른 전기 설비와 분리하는 분리격실 구조와 일정 이격거리 유지 기준도 새로 도입된다. 리튬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열폭주 발생 시 화재 확산 속도가 빠른 만큼, 물리적 분리와 거리 확보를 통해 화재가 인접 구역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기존 시설 가운데 물리적 구조 변경이 어려운 곳은 대체 설비나 운영절차 강화 등 대안조치 계획을 수립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부가통신서비스 분야에서는 일평균 국내 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이나 국내 트래픽 비중 2퍼센트 이상인 사업자가 대상이다. 이들 사업자에 대해서는 분산·다중화·백업 체계 구축, 서비스 업데이트 사전검증 등 48개 항목을 점검 중이다. 지난해에는 시정명령 5건, 시정권고 15건이 나왔고 올해는 시정권고 13건이 조치될 예정이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자가 부가통신사업자 설비를 위탁 운영하는 경우, 장애 인지 시점에 즉시 상황을 전파하는 관리 체계를 의무화해 서비스 중단 시간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기간통신서비스 분야에서는 통신사의 기지국 설비 확산을 반영해 중요통신시설 등급 지정 기준을 손질한다. 기지국 디지털신호처리부 개수 기준을 상향하고, 이용자 단말과 직접 연결되는 기지국 무선신호 처리부 개수 기준을 새로 도입해, 실제 이용자 영향도가 높은 설비의 등급을 보다 정교하게 분류하는 방향이다. 통신시설 지하공간의 침수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도 강화된다. 차수시설 높이 기준을 추가하고 배수시설 병행 설치를 요구해, 집중호우나 태풍 등 풍수해 발생 시 기지국과 중계시설의 동시 장애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통신재난관리 기준 상향은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의 안전 규제 강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해외에서는 배터리 화재와 전력 계통 장애가 클라우드 서비스 중단과 직결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배터리 관리와 화재 감지, 설비 이격거리를 통합한 안전 설계가 사실상의 국제 표준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클라우드, 스트리밍, 전자상거래 등 부가통신 트래픽이 통신 인프라 부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데이터센터와 부가통신사업자를 하나의 연속된 재난관리 단위로 묶는 접근이 강화되고 있다.
다만 데이터센터 업계에서는 배터리실 구조 변경과 추가 감지 설비 구축이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부담도 제기된다. 특히 리튬배터리 기반 무정전전원장치 도입이 빠르게 늘어난 상황에서, 분리격실과 이격거리 기준이 향후 신규 센터의 설계와 입지 선택에 직접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장애 발생 시 서비스 중단에 따른 손실 비용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안정성 강화를 통한 신뢰도 제고가 투자 유치와 고객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계획을 데이터센터와 통신 인프라를 사회기반시설 수준의 안전 규범 아래 두기 위한 첫 단계로 보고 있다. 최우혁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디지털은 사회와 경제의 핵심 인프라며, 디지털 재난이 국민 안전과 국가 경제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재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재난관리 체계가 현장에 신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점검을 병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강화된 안전 기준이 실제 설비 투자와 운영 관행을 얼마나 빠르게 바꿀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용과 규제 부담이 어떻게 조정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