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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로고도 금”…도시광산, 집안 서랍이 재활용 광산된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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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에어컨과 휴대전화에 실제 금이 사용된 사례가 공개되며 집 안 서랍과 창고가 잠재적 자원 창고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폐가전과 폐휴대전화 등에 포함된 귀금속을 회수해 다시 산업 원료로 쓰는 도시광산 개념과 맞물리면서 재자원화 산업의 의미도 주목받는 분위기다. 전자제품 속 숨은 금속이 고물 수준을 넘어선 경제적 가치를 지니면서, 향후 IT·전자 산업과 자원 순환 비즈니스의 접점이 한층 넓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금은방을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링링언니가 LG전자의 휘센 에어컨 한정판 모델을 감정한 결과, 외관 로고에 단순 도금이 아니라 순금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해 화제를 모았다. 통상 가전 로고에는 도금이나 합금이 쓰이는데, 일부 프리미엄 모델에서 실제 귀금속을 적용한 사례가 확인된 셈이다.

같은 채널에서는 2000년대 출시된 휴대전화에서도 유사 사례가 이어졌다. 지난 22일 공개된 이번엔 핸드폰에 금이라고요라는 영상에서 2009년 출시된 팬택 스카이 듀퐁 에디션 모델을 감정한 결과, 기기 외관의 금색 로고 띠에 18K 금이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뢰인은 2009년에 해당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실제 금이 들어갔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기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해 왔다고 설명했다.

 

정밀 분석 결과 이 휴대전화의 로고 띠는 순도 18K로 확인됐고, 무게는 약 0.27돈으로 측정됐다. 감정 당일 금 시세를 적용한 평가액은 약 14만 8700원 수준으로 산정됐다.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도 아니던 구형 피처폰 일부 장식에만 실제 금이 쓰였음에도, 재질 가치만 따져도 중고 전자제품 가격을 뛰어넘는 금액이 형성된 셈이다.

 

링링언니는 엑스캔버스 TV, 휘센, 그리고 이제 듀퐁폰까지라며 과거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을 위해 순금을 활용한 IT·가전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뢰인이 보관만 했던 전화기에 15만원에 가까운 금값이 매겨지자 너무 좋다며 반가움을 표현한 대목은, 전자제품 속 숨은 자원의 경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사례가 알려지자 온라인 이용자들은 집에 있는 옛 가전을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스카이 감성에 금까지 있었던 줄은 몰랐다, 휴대전화 서랍 다시 열어봐야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단종된 레거시 제품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실제 금속 자원을 찾아보겠다는 수요가 맞물린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개별 제품에 소량 들어간 귀금속이 바로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러한 관심이 도시광산 개념을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도시광산은 신규 광산 개발 대신 사용을 마친 전자제품·가전 등에서 금, 은, 구리, 희유금속을 회수해 다시 산업 원료로 쓰는 방식을 뜻한다. 반도체, 스마트폰, 서버 등 IT 제품에 다양한 금속이 사용되는 만큼, 이들 폐제품을 체계적으로 수거·분해·정제하면 일정 수준의 광산 채굴과 유사한 자원 확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특히 금의 경우 지표광산에서 채굴 가능한 양이 줄어드는 가운데, 전자회로 기판과 커넥터, 도금 부품 등에 폭넓게 쓰이며 도시에서 회수 가능한 비중이 커지고 있다. 단일 제품에 들어가는 양은 적어도 수십만 대, 수백만 대 단위로 축적될 경우 상당한 자원 풀을 형성한다는 게 재활용 업계의 설명이다. 일부 분석에서는 동일 중량 기준으로 볼 때 금은광석보다 폐전자제품에서 회수 가능한 금 함량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돼 왔다.

 

다만 이번 사례처럼 외관 장식에 순금을 쓴 전자제품은 예외적 케이스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제조사들은 원가 절감과 경량화, 친환경 설계를 이유로 귀금속 사용을 최소화하는 추세다. 실제로 반도체 패키지, 커넥터 등 필수 부품에는 여전히 금이 쓰이지만, 장식이나 로고 수준에는 합금이나 도금으로 대체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개별 가정이 보관한 옛 제품에서 당장 많은 금을 찾기보다는, 체계적인 수거와 산업적 재활용 인프라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도시광산 사업화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유럽과 일본 등은 전자폐기물 수거·분류·금속 정련 시스템을 비교적 일찍 구축하면서, 자국 자원 확보와 재활용 산업 육성을 병행해 왔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 메달을 폐전자제품에서 회수한 금속으로 제작해 도시광산 상징성을 부각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IT 기업은 서버와 데이터센터 장비 폐기 시 금속 회수 비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폐가전 무상 수거, 재활용센터 확충, 전자폐기물 소재 회수 기술 개발 등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재자원화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기조를 내놓으면서, 폐배터리와 함께 폐가전·폐휴대전화에서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플랫폼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영세 재활용 업체 중심의 현재 구조로는 안정적 수거와 고순도 정제, 환경 규제 준수까지 동시에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은 전자제품 속 금과 희유금속의 회수율을 높이려면 소비자 참여, 제조사의 설계 단계부터의 리사이클 고려,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와 규제 정비가 함께 요구된다고 말한다. 또한 구형 제품의 소장 가치와 소재 가치가 뒤섞인 상황에서 무분별한 해체가 아닌, 안전하고 합법적인 회수 시스템 내에서 도시광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집 안 서랍 속 오래된 휴대전화와 창고에 방치된 에어컨이 잠재적 금속 광산으로 여겨지는 지금, 일회성 화제에 그칠지, 자원 순환과 재자원화 산업 확산의 계기로 이어질지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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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광산#휘센에어컨#팬택스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