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은 시기상조"…뉴욕증시, 인터넷 붕괴와 다른 상승세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투자 열기가 뉴욕 증시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지만,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 붕괴와 같은 대규모 거품 붕괴 국면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9일 현지시각 기준 미국 증시의 AI 랠리를 평가하면서, 사라진 시가총액이 5조 달러를 넘었던 과거 인터넷 거품과 달리 현재 AI 붐은 아직 붕괴 신호가 뚜렷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당시 미국 실업률이 4퍼센트에서 6퍼센트 수준으로 급등하고 경기 침체가 이어졌던 전례를 상기하면서도, 이번 AI 사이클은 구조적 조건이 다르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NYT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짚었다. 우선 인터넷 열풍 당시와 마찬가지로 AI 역시 거대한 부의 재분배를 촉발하고 있으며, 신생 기업들에 과도한 밸류에이션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벤처 투자 자금의 64퍼센트가 AI 스타트업으로 몰리고 있어, 2000년 당시 80퍼센트가 인터넷 기업에 집중됐던 양상과 닮았다. 투자 격언인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원칙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도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다만 시장 구조와 기술·사업 기반에서는 뚜렷한 차별점이 부각된다는 것이 NYT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인터넷 시대에는 아이디어와 소수 개발자 중심의 스타트업이 열풍을 주도해 파산 리스크가 컸던 반면, 이번 AI 붐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 등 시가총액 수조 달러 규모의 빅테크가 핵심 투자 주체로 나섰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 기업은 이미 안정적인 현금창출원과 사업 모델을 확보하고 있어, AI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회사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실제 아마존의 경우 AI 데이터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지만, 전자상거래와 물류 기반 주력 사업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 역시 생성형 AI 및 모델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동시에 온라인 검색·동영상 광고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최근 발언에서 AI 거품론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현재 AI 주요 기업들이 실질적인 사업 모델과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들어 1990년대 인터넷 거품과 확연히 다른 국면이라고 언급했다.
기술·수요 측면에서도 당시와 구조가 다르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1990년대 인터넷은 완전히 새로운 접속 플랫폼으로, 대중이 온라인 접속 개념을 받아들이고 광대역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초창기에는 전화선 접속 비중이 높았고, 인터넷 서비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성숙도가 낮고 비용이 높았다. 웹 브라우저 보급을 주도한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90퍼센트를 기록하던 시기에도 이용자는 5500만 명 수준에 그쳤고, 많은 인터넷 기업들은 충분한 고객을 모으지 못해 성장에 실패했다.
반면 현재 AI 기술은 이미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고속 네트워크 위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형태로 보급되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서비스는 사실상 전 세계 대부분의 인터넷 사용자에게 도달 가능한 구조를 갖췄고, 실제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는 사업적 효용도 빠르게 입증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AI 도입 속도가 초기 인터넷 보급 속도의 15배에서 60배에 달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산업 현장에서도 생산성 향상, 고객 응대 자동화, 코드 생성, 데이터 분석 등 다층적인 활용이 진행되면서 기술이 단순 시연 단계를 넘어 수익 창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 규모와 밸류에이션에서도 스케일 차이가 부각된다. 인터넷 버블 정점 당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던 세 기업은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로, 모두 인터넷 인프라와 기반 기술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당시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산해도 약 5000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현재 AI 붐에서 유사한 위상을 차지하는 엔비디아의 기업가치는 단일 기업으로 4조5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아마존, 구글, 메타, 비상장사인 오픈AI의 추정 기업가치를 합하면, 2000년 당시 미국 전체 주식시장의 총 시가총액인 17조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NYT는 이처럼 압도적인 자본 규모와 자금 여력이 시장에 일정한 안도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넷 버블 시기에는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상태에서 매출을 끌어올려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압박이 컸고, 상당수 기업들이 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해 붕괴를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현재 AI 시장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이미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와 현금 창출력을 기반으로 AI 투자 사이클을 흡수할 여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투자자 역시 이 같은 재무 체력을 전제로 밸류에이션을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 환경도 과거와 온도차가 있다. 1990년대 미국 정부는 시장 지배력 문제를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며 플랫폼 기업 견제에 나섰다. 이에 비해 현재 미국 행정부는 AI 중심의 미래 산업 경쟁력을 앞당기기 위해 연구개발 지원, 인프라 확충, 공공 프로젝트 연계를 포함한 다양한 육성책을 병행하고 있다. AI 안전성과 데이터 보호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성장 촉진에 무게가 실려 있어 규제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AI 거품론 자체가 과열 신호라기보다 아직 본격적인 거품 형성 국면이 아니라는 정반대 신호일 수 있다는 평가도 흥미를 끈다. 벤처투자자 벤 호로위츠는 가격이 절대 떨어질 수 없다고 모두가 믿는 순간에 거품이 형성된다며, 현재처럼 많은 시장 참여자가 거품 여부를 논쟁하는 단계는 아직 거품이 완전히 발생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는 AI에 회의적이던 마지막 비판자가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AI 투자를 선언하는 순간이 진정한 거품 정점이라며, 그 시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투자 흐름 역시 인터넷 시대와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JP모건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현재 AI 관련 주요 거래 구조를 평가하면서, 인터넷 시대에는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기업들이 과도한 성장 서사를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오히려 자본이 AI 기술과 플랫폼을 좇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빅테크와 AI 스타트업 간 전략적 투자, 합작법인, 장기 연산 자원 공급 계약 등이 얽힌 복잡한 거래망이 형성되면서, 기술 공급자와 수요자, 인프라 업체가 동시에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가 짜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모든 AI 기업이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경고도 나온다. 아직 뚜렷한 수익 모델 없이 막대한 연산 비용과 연구개발 비용을 소진하는 일부 스타트업의 경우, 보유 현금이 바닥나기 전에 기술을 상용화하고 유의미한 매출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다만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이들이 시장에 던질 수 있는 충격이 과거 도트컴 붕괴 때와 같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실은 발생하더라도, 자본시장의 규모와 대형 투자자의 리스크 흡수 능력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와 금융시장은 AI 기술이 생산성과 산업 구조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바꾸느냐에 따라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인 주가 변동과 거품 논쟁이 지속될 수 있지만, AI 인프라와 응용 서비스가 기업 경영과 산업 운영에 깊숙이 스며드는 속도와 폭이 장기 사이클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이번 AI 투자 열기가 과거 인터넷 버블과 달리 실물 경제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릴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