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헌정질서 지킬 책임 공유하자"…이재명, 5부요인 오찬서 조희대와 마주앉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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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긴장 속에서 헌법기관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상계엄 사태 발생 1년을 맞은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5부 요인을 초청해 오찬을 진행하면서 헌정질서 수호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여권과 거리를 둔 행보를 보여온 조희대 대법원장이 참석해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오찬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김민석 국무총리,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다. 오찬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대통령실은 모두발언 내용을 중심으로 자리를 소개했다.

참석자들은 식사에 앞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분들을 6개월 만에 보게 됐다"고 인사하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해 다소 경직된 관계 속에서도 예우를 갖춘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먼저 회동 시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더 일찍 모셨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좀 늦었다"고 말문을 열고 "일부러 오늘로 날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의미 있는 날에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 1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리며 시국 인식과 정치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히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오늘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특별한 날이자 시민들의 행동이 시작된 날"이라며 "우리 모두 헌정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기관장이라는 점에서 오늘 만남의 의미가 각별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시민 저항과 헌정 질서 회복 과정을 상기시키며, 헌법기관 수장들의 공동 책임 의식을 환기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이 더불어민주당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이의 긴장 관계를 염두에 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온 사법개혁을 둘러싸고 조 대법원장과의 불편한 기류가 형성된 상황에서, 헌법 수호 의무를 전면에 내세운 발언이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도권 모든 기관장에게 헌정질서 준수와 민주주의 수호를 함께 책임지자고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도 더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찬 취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애초에는 순방 결과도 말씀드리고, 국정 운영 상황도 말씀드리며 조언을 들어보고 싶어 마련한 자리"라고 언급했다. 이어 "앞으로도 자주 모시겠다"며 "허심탄회하게 각 기관 운영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제도권 지도부와의 정례적 소통 의지를 밝히며 협치 복원 의지를 비친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참석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최근 여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다른 헌법기관과 더불어 사법부 독립을 강조해 온 가운데, 대통령 초청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헌법기관 간 공식 소통 채널에는 응하되, 사법부 독립 원칙은 유지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국회와 정치권에서는 이번 5부 요인 오찬을 계기로 헌법기관 간 갈등이 다소 완화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사법개혁 드라이브 과정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긴장 국면이 길어질 경우, 국정 전반의 협치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반면 보수 야권에서는 사법부와 헌법기관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줄어들지 않으면 제도적 충돌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계속돼 왔다.

 

다만 이번 회동이 상징성을 넘어 구체적 제도 개선이나 입법 협력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대통령실은 오찬에서 구체적인 법안이나 정책 현안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야 간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5부 요인 간 정례 협의체 구축 여부도 향후 정국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1년이라는 시점에 맞춘 5부 요인 회동이 향후 권력 기관 간 관계 재정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과 함께,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적 전망이 교차한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사법개혁과 권력기관 개편 문제를 놓고 다시 치열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며, 정부는 헌법기관과의 소통 채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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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조희대대법원장#5부요인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