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계엄은 계몽이 아닌 악몽"…양향자, 지도부 정면 비판에 국민대회 취소 파장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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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를 둘러싼 갈등과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당 안팎의 분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계엄 1년을 앞두고 예정했던 경기지역 국민대회를 취소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계엄 사태에 대한 당 차원의 성찰을 거듭 요구했다. 그는 당 지도부를 향해 "혹여 아직도 1년 전 12월 3일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미래로 나아가고 싶은 당원과 지지자를 정작 우리 지도부가 그날에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계엄 1년이 되는 날 우리 지도부도 출범 100일을 맞는다"며 "새 지도부의 사명은 당의 재건과 외연 확대였다. 그 핵심 전략은 혁신이었고 그 시작은 불법 계엄과 대선 패배에 대한 철저하고 이성적인 반성이었다"고 강조했다. 계엄 사태와 대선 패배를 정리하지 못한 채 혁신을 말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는 계엄 사태의 성격을 규정하며 지도부 책임론도 함께 제기했다. 양 최고위원은 "계엄은 계몽이 아닌 악몽이었다. 대통령은 당에 계엄을 허락받지 않았고 소통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당에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대통령의 오판을 막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 당 모두의 잘못이고 책임"이라고 말해 당 전체에 공동 책임을 부여했다.

 

지지층 내부 갈등에 대한 우려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양 최고위원은 "많은 지지자들이 여전히 빼앗긴 정권, 잃어버린 대통령을 놓지 못하고 있다"며 "급기야 몇몇은 우리 안의 배신자를 만들어 낙인찍고 돌 던지고 심지어 목을 매달려 한다"고 말했다. 강성 지지층 일부가 비판적 인사들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분위기를 꼬집은 것이다.

 

그는 특히 일부 당내 인사들을 겨냥해 "이런 반지성과 울분을 진정시키긴커녕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천벌 받을 일"이라고 경고했다. 계엄 사태에 분노한 지지자들의 정서를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삼는 행태를 비판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양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 주말 당이 개최한 국민대회에서 지도부 가운데 처음으로 "불법 계엄에 대한 반성"을 언급했다가 현장에서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와 야유를 받은 바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 발언이 당시 충돌 이후에도 기조를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회의에서 우재준 청년최고위원도 과거 회귀를 경계하며 지도부의 설득 노력을 촉구했다. 우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지금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며 "성난 지지층을 배척해서도, 이용해서도 안 되고 함께 설득해 미래로 나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껄끄러운 사람도 직접 만나 대화해야 한다. 우리 당이 지금까지 그만한 노력을 해 온 것인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두 최고위원이 계엄 사태와 지지층 문제를 둘러싸고 연이어 공개 발언을 쏟아냈지만, 장동혁 대표는 회의 내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공개 회의에서도 계엄 관련 추가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공개 발언 후 비공개 회의에서 계엄 관련 발언은 없었다"며 "계엄 1년 메시지는 현재 대표가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고 계속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대표 측이 내부 이견과 지지층 반발 사이에서 메시지 수위를 조율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일부 강경 발언에 대한 제동 여부를 묻는 질문도 뒤따랐다. 박 수석대변인은 "당 국민대회에서 김민수 최고위원이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향후 이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런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계엄을 둘러싼 최고위원들 간 인식 차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계엄 논쟁과 지지층 반발이 계속되자 국민의힘은 거리 민심 행사에도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2일 경기도에서 열 계획이던 마지막 당 국민대회 일정을 1일 전격 취소했다. 구체적인 취소 사유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지도부와 최고위원들에 대한 강성 지지층의 항의가 반복되면서 현장 혼란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 일각에서는 최근 국민대회 현장에서 강성 지지자들이 일부 최고위원과 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발언에 항의와 야유를 보내는 등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계엄 사태를 둘러싼 평가 차이가 곧바로 대선 패배 책임공방과 진영 내 적대감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계엄 1년을 앞두고 메시지 방향과 당내 통합 전략을 놓고 고민을 이어갈 전망이다. 친윤계와 비윤계, 강성 지지층과 중도 확장론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향후 지도부의 리더십과 총선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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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장동혁#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