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칩 수출 규제 법제화 보류”…미국, 게인 AI 법안 제외 수순에 엔비디아 안도와 긴장 교차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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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3일, 미국(USA) 워싱턴에서 중국 등 우려 국가를 겨냥한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수출 규제 입법을 둘러싸고 중대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미국 의회가 연례 국방수권법안에서 이른바 ‘게인(GAIN) AI 법안’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며, 국제 반도체 공급망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직간접적 파장이 번지고 있다. 이번 논의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강화 흐름 속에서 업계 이해관계와 안보 우려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로 주목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3일,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게인 AI 법안이 5일 공개 예정인 올해 국방수권법안 최종안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향후 막판 조율 과정에서 돌발 변수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현 시점에서 법제화가 보류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진다. 게인 AI 법안은 반도체 업체가 중국 등 지정 국가에 AI 칩을 수출하기 전에 미국 내 수요를 우선 충족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미 ‘게인 AI 법안’ 국방수권법안서 제외될 듯…엔비디아 수출제한 부담 완화 전망
미 ‘게인 AI 법안’ 국방수권법안서 제외될 듯…엔비디아 수출제한 부담 완화 전망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 내 AI 수요에 대한 공급이 우선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로 향하는 첨단 칩 물량이 대폭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 AI 산업 전체의 공급 전략과 수출 구조에 상당한 조정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특히 엔비디아와 같은 주요 설계 업체는 글로벌 매출 구조상 중국 비중이 적지 않아, 법안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혀 왔다.

 

이 같은 입법 움직임을 막기 위해 엔비디아는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대규모 로비전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엔비디아가 조직적인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게인 AI 법안 저지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엔비디아 측은 법안이 중국을 압박하려는 대중 강경파의 기대와 달리, 중국의 AI 기술 자립을 오히려 앞당기고 미국의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3일 직접 워싱턴을 찾아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황 CEO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의회 주요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며 막판 설득전을 벌였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집무실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AI 관련 쟁점에 답변하기 위해 워싱턴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발표됐던 기존 ‘AI 확산 프레임워크’를 언급하며, 이번 게인 AI 법안이 “미국에 더 해롭다”고 강조했다.

 

CNBC 등에 따르면 황 CEO는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 사실을 공개하고, 이 자리에서 첨단 AI 반도체 수출 통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고 밝혔다. 업계에는 AI 칩 수출 규제가 과도하게 강화되면 미국 기업의 매출과 연구개발 여력이 줄어들고, 그 공백을 중국 로컬 업체들이 메우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뚜렷하다. 황 CEO의 워싱턴행은 이러한 업계 전반의 불안감을 대변한 행보로 해석된다.

 

백악관도 게인 AI 법안의 국방수권법안 편입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백악관이 의회를 상대로 게인 AI 법안이 국방수권법안에 포함되지 않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행정부가 이미 AI 확산 프레임워크 등 행정 조치를 통해 고성능 칩 수출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법제화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 동맹국과 글로벌 기술 기업의 이해관계 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서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히 거세다. AI 챗봇 ‘클로드’를 개발한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공개 석상에서 엔비디아의 첨단 칩을 중국에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가 먼저 AI 기술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수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중국에 대한 첨단 칩 공급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모데이 CEO는 뉴욕타임스(NYT)가 주최한 ‘딜북 서밋’ 행사에 참석해 이 같은 의견을 밝히며, 미국과 동맹국이 안보 우려를 반영한 기술 관리 체계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 내부에서도 기업 이해관계에 따라 규제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며, 중국을 향한 수출 통제를 둘러싼 논쟁이 AI 생태계 내부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미국 의회의 대중 강경파 의원들이 게인 AI 법안의 국방수권법안 제외와 별개로, 중국을 겨냥한 기존 AI 칩 수출 규제를 법제화하는 독자적 ‘세이프(SAFE·Secure and Feasible Export)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세이프 법안이 추진될 경우, 행정부가 시행 중인 각종 행정 명령과 수출 규제 지침이 의회의 입법 형태로 고착될 수 있어, 향후 규제 완화 여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게인 AI 법안이 이번 국방수권법안에서 빠지더라도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구조적 구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세이프 법안과 같은 후속 입법 논의가 이어질 경우, 미국의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 기조는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과 기술 기업들에 지속적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AI 칩을 둘러싼 규제가 공급망 재편과 기술 동맹 구도를 재정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미중 경쟁의 연장선에서 관련 외교전과 로비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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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게인ai법안#미국국방수권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