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내, 구더기 생길 때까지 방치”…육군 부사관 살인 혐의로 기소
아픈 아내를 수개월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육군 부사관이 군검찰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며 수사와 처벌 수준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군사경찰 단계에서는 유기치사 혐의가 적용됐지만, 군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군 당국 등에 따르면 육군 사사단 군사경찰은 최근 부사관 A씨를 중유기치사 혐의로 군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군검찰은 사건 기록과 정황을 검토한 뒤 A씨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군검찰은 주위적 공소사실로 살인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유기치사 혐의를 적시해 향후 재판 과정에서 법리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은 지난달 17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아내의 의식이 혼미하다”는 내용의 119 신고가 접수되면서 드러났다. 출동한 구급대는 집 안에서 발견된 A씨의 아내 B씨의 상태를 보고 중증 방임 의심 정황을 확인했다. 당시 B씨는 전신이 대변 등 오물로 오염돼 있었고, 하지 부위에는 심각한 욕창과 감염, 피부 괴사 등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패혈증이 악화해 사망했다. 의료진은 상처와 감염 상태, 영양·위생 관리 정도 등을 토대로 방임 가능성을 의심해 관계 기관에 신고했고, 경찰은 B씨 사망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A씨를 긴급체포했다.
수사 결과 A씨는 지난 8월부터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세로 거동이 불편해진 B씨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의 몸에 광범위한 욕창이 생기고 상태가 악화했음에도 약 3개월 동안 병원 치료를 받게 하거나 적절한 보호·간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기관은 이러한 행위가 단순한 부주의 수준을 넘어,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부작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은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보도되며 공분을 키웠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한 구급대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B씨의 전신이 대변으로 오염돼 있고 수만 마리 구더기가 전신에 퍼져 있었다”고 말하며 당시 상황이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A씨의 행위에 살인죄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생명을 보호·구호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를 말한다. 배우자 관계에서의 보호 의무, 피해자의 건강 상태 악화를 인지할 수 있었는지, 병원 치료를 회피한 경위와 기간 등이 재판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군사경찰은 당시까지 확보한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유기치사 혐의가 적절하다고 판단해 송치했다. 반면 군검찰은 방임 기간과 피해자의 상태, 사망에 이르는 경과 등을 종합해 살인죄 구성요건인 ‘살해의 고의’가 간접적으로나마 인정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공소장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군검찰도 예비적 공소사실로 유기치사를 함께 적시해, 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군 부사관이라는 신분과 무관하게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가정 내 돌봄 부담과 정신질환 동반 환자 관리 체계 미비 등 구조적 문제도 함께 짚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보호 의무 위반이 어느 수준일 때 살인으로까지 평가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향후 유사 사건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 범위가 넓어질지 여부도 가늠대가 될 전망이다.
군검찰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확보된 증거와 법리에 따라 혐의를 판단해 기소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법원은 조만간 첫 공판 기일을 지정하고 본격 심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A씨의 구체적 진술 내용과 변호인 측 입장 등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재판에서는 B씨의 질병 경과, 가정 내 돌봄 환경, A씨가 취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조치 범위 등이 두루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군사법원 판단에 따라 가정 내 방임 치사·살인 사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