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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영업비밀 분쟁” 아이언메이스 항소 일부승소…IP 공방 새 국면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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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사의 소스 코드와 기획 자료가 핵심 자산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게임업계의 대표적 영업비밀 분쟁이 2심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울고등법원이 아이언메이스와 넥슨 간 항소심에서 다크앤다커의 저작권 침해 주장을 다시 한 번 부정하면서도, 영업비밀 침해 범위는 1심보다 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게임 산업에서의 기술·데이터 보호와 창작 자유의 경계선을 가늠할 수 있는 판례로 주목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넥슨이 추진했던 미공개 프로젝트 P3와 관련한 저작권 침해 주장을 1심에 이어 완전히 기각했다. P3 게임과 다크앤다커의 표현 형식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아,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창작 표현을 베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아이언메이스가 강조해온 다크앤다커의 독자적인 창작물 성격이 사법적으로 다시 확인된 셈이다.

반면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서는 판단이 더 엄격해졌다. 법원은 P3 개발 과정에서 생성된 정보뿐 아니라 실제 파일까지 영업비밀로 폭넓게 인정하고, 이를 아이언메이스 측이 부정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다만 손해배상 규모는 원심의 약 85억 원에서 약 28억 원이 줄어든 57억 원으로 산정했다. 침해 범위는 확대되되, 실제 손해액 추정은 조정된 결과다.

 

아이언메이스는 입장문을 통해 저작권 침해 주장이 완전히 기각된 점을 “다크앤다커가 독자적인 창작물임을 공고히 인정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영업비밀 침해가 넓게 인정된 데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하며, 창업 초기부터 영업비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내부 윤리 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준수해 왔다고 반박했다. 개발 인력 이동과 스타트업 설립 과정에서 어디까지가 합법적 노하우 이전이고 어디서부터가 위법한 영업비밀 사용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가 부각된 대목이다.

 

넥슨은 정반대의 지점을 부각했다. 법원이 P3 관련 정보에 더해 P3 파일 자체도 영업비밀로 인정한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고 보면서도, 손해배상액이 줄어든 데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넥슨은 2020년 7월 P3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시 팀장 최 모 씨가 소스 코드와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했고, 이 자료가 아이언메이스의 다크앤다커 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게임 개발 분야에서 자주 발생하는 인력 이탈과 프로젝트 분화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때, 저작권과 영업비밀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비교적 선명한 기준을 제시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시나리오와 그래픽, 게임 시스템 표현 등 창작 요소는 별도의 기획과 구현을 거쳐 독자적 형식성을 확보할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지만, 개발 과정에서 확보된 구체적 코드와 설계 파일, 내부 데이터는 영업비밀 보호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게임업계 IP 분쟁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대형 게임사들이 전직 개발자와 신생 스튜디오를 상대로 소스 코드, 개발 툴, 레벨 디자인 데이터 등을 둘러싼 소송을 잇달아 제기해 왔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순수 아이디어나 장르 개념, 일반적인 게임 메커닉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법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산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기술적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따져왔다.

 

국내 게임 산업 관점에서 이번 판결은 두 가지 상반된 신호를 준다. 한편으로는 대규모 개발사가 구축한 프로젝트 자산이 법적으로 강하게 보호될 수 있다는 점에서, IP와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동시에 독립 개발사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전직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시도가 저작권 침해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만 영업비밀 범위에 대한 법원의 폭넓은 해석은 채용과 개발 프로세스, 내부 보안 통제를 한층 엄격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법조계와 업계에서는 상고 여부와 대법원 판단이 향후 기술 인력 이동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영업비밀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흐름과, 개발자 이동의 자유와 창작 생태계 활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 산업에서 코드와 데이터, 창작 표현의 경계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며, 산업계는 이번 판결이 실제 개발 현장의 관행과 인력 운용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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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메이스#넥슨#다크앤다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