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위성 제조부터 해상 발사까지 40분”…제주, 우주산업 다이아몬드 체제 핵심축 부상

박지수 기자
입력

우주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제주도가 새로운 전략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위성 제조와 해상 발사가 한 축으로 묶이고, 특성화고와 대학, 스타트업까지 아우르는 인력·데이터 생태계가 더해지면서 전국 우주 클러스터 지형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2일 오후 제주시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테크노캠퍼스에서는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 준공식이 열렸다. 옛 탐라대 부지를 매입해 조성된 기회발전특구 내에 들어선 이 시설은 국내 최대 수준의 소형 저궤도 위성 양산 기지로, 제주도가 국가 우주산업 전략에 본격 편입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준공식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손재일 한화시스템 대표이사, 주요 기관 단체장, 지역 주민과 도민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도와 한화시스템,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한 행사인 만큼, 향후 입지 경쟁과 정부 지원을 둘러싼 정치적·정책적 협력 구도가 어떻게 구축될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제주우주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매달 4기에서 8기의 소형 저궤도 위성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단일 시설 기준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양산 능력이다. 한화시스템은 이 센터에서 생산된 위성이 육상 장거리 이동 없이 곧바로 인근 제주 해상에서 발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조와 발사 간 물리적 거리를 극적으로 줄인 이른바 제주형 우주산업 공급망이 구현되는 셈이다.

 

제주도는 이 공급망을 바탕으로 대전 연구개발, 경남 위성제조, 전남 발사체 중심의 기존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 체제에 위성정보 활용 분야 강점을 앞세워 참여하겠다는 구상이다. 도는 제주가 위성 데이터 처리·활용을 담당하는 축으로 더해지면 전국 우주 클러스터가 다이아몬드 체제로 재편되며 시너지가 커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주산업 거점 도약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한화시스템과 제주도는 이에 맞춰 산·학·연 연계 인력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협약형 특성화고로 지정된 한림공업고등학교 졸업생 4명은 이미 한화 제주우주센터에 정식 채용됐다.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 인력을 지역에서부터 키워내겠다는 전략이다.

 

한림공업고등학교는 국내 유일 항공우주 분야 특성화고로, 2024년부터 6년간 136억원을 지원받아 교육청·지자체·대학·지역 기업이 함께하는 인재 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한화시스템 고문을 지낸 우주산업 전문가 이진승을 개방형 공모 교장으로 선임했다. 학교는 신입생 205명을 대상으로 항공우주와 스마트기술, 인공위성 기초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후 학년별로 항공우주 부품 금형 설계, 인공위성 전자회로 계측 등 심화 전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진승 교장은 제주시 한림읍 학교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제조 현장 수요를 겨냥한 교육 방향을 분명히 했다. 그는 “1차적으로 포커싱하는 부분은 항공 우주의 제조인력, 테크니션을 키우는 것”이라며 “200명을 항공우주 분야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협약형 기업을 계속 확대하는 것이 외부에서 온 제 미션 중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교명을 한림항공우주고등학교로 바꾸고, 40평 규모 클린룸과 우주 관련 전시 공간 등 특화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제주 외 지역 학생도 모집해 전국 단위 인력 허브 역할을 노린다.

 

제주도는 고급 인력 육성을 위해 대학·대학원 과정도 강화한다. 도는 교육부 지방대 혁신 사업인 RIS-RISE와 연계해 지역 대학에 미래모빌리티 RIS 융합전공과 항공우주공학 마이크로디그리 과정을 설치할 예정이다. 석·박사급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원 과정 도입도 검토 중이다. 제조 중심의 기술 인력에서 나아가 위성 운용·데이터 분석·서비스 기획까지 아우르는 전문가 풀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제주도의 전략은 위성 제조와 발사에 그치지 않는다. 도는 내년부터 위성정보 활용, 이른바 다운스트림 산업으로 영역을 넓혀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화시스템은 제주에 설치될 위성 지상 기지국을 통해 소형 SAR 위성을 상시 관제하고, 위성이 보내오는 고해상도 영상을 수신해 우주개발 경험을 축적할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B2G와 B2B 시장을 겨냥한 환경 모니터링, GIS 지도 제작, 위성영상 자동 융합·분석 서비스가 추진된다. 국토·해양 관리, 재난 대응, 기후 변화 대응 등 공공정책 분야와 연계될 경우, 중앙정부와 지자체 수요를 동시에 겨냥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주에는 이미 위성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를 펼치는 민간 기업도 자리 잡고 있다. 우주 지상국 서비스 및 위성 영상 전문 기업 컨텍은 제주시 한림읍 대지면적 2만2258㎡ 부지에 안테나 11기를 갖춘 민간우주지상국 컨텍ASP를 운영 중이다. 컨텍은 위성영상 생성용 데이터 처리 솔루션, 지상국 시스템 엔지니어링 솔루션, GSaaS 네트워크 솔루션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컨텍 측은 전 세계에서 위성영상 수신과 처리, 분석을 모두 제공하는 토털 솔루션을 갖춘 민간 사업자는 자사가 유일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200개 이상 고객과 파트너사를 확보했으며, 100건이 넘는 사업화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실적을 쌓고 있다. 제주도가 데이터 허브로서 가진 지리적·기술적 잠재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컨텍은 위성데이터 기반 통합서비스를 넓히기 위해 올해 호주에 광통신지상국을 설치했고, 내년 1분기에는 제주에도 같은 시설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망원경 기반 위성 감시 서비스 준비와 함께 국방 분야 수요를 겨냥해 양자암호통신을 비즈니스 모델로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고려대학교 홍석희 교수를 본부장으로 영입하고 관련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방위산업과 정보보안까지 연계된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제주 기반 기업이 역할을 넓히는 셈이다.

 

관광산업과의 연계도 추진된다. 컨텍은 내년 3∼4월 우주 체험관을 개장해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로 무료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우주산업 인프라를 교육·관광 자원으로 활용해 도민 체감도를 높이고, 청소년 진로 교육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이재원 컨텍 부사장은 컨텍ASP 브리핑에서 초기 사업성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며 “처음 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누가 신청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고객사가 금방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위성이 동쪽 상공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빠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있어서 공백이 생기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지면 태평양이 있어서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황이어서 제주도가 데이터를 확보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강조했다. 지리적 이점이 곧 데이터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제주도와 산업계는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 한림항공우주고등학교, 지역 대학 RIS-RISE 과정, 컨텍ASP 등을 잇는 우주산업 벨트를 구축해 중앙정부의 우주 전략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향후 국회와 정부 차원의 우주산업 관련 예산·입지 논의에서도 제주 참여 비중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주도는 제조·발사·데이터 활용을 포괄하는 우주 밸류체인 구축을 통해 신산업 기반을 넓히겠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들은 내년 이후 조성될 위성정보활용 클러스터와 인력 양성 사업 성과에 따라 정부 및 국회와의 협의 폭을 넓혀가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우주산업 예산과 지역 클러스터 배분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관련 정책과 지원 방안을 놓고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박지수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제주도#한화시스템#컨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