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반지의 제왕도 역사냐"…이재명 환단고기 언급에 야권 강력 비판
정치권이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을 둘러싸고 격돌했다. 야권은 이 대통령이 정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역사학계가 위서로 규정한 환단고기를 언급한 데 대해 "개인 소신을 역사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정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를 거론하며 "문헌이 아니냐"고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단고기는 한민족 역사를 선사 시대로까지 확장해 서술한 책으로, 국내 역사학계는 오랜 기간 위서로 판단해 왔다.

야권은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여전히 진위 논쟁이 벌어지는 사료로 간주하고 그 내용을 신뢰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4일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한 게 아니다"라며 "분명한 역사관 아래에서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권 공세는 잦아들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은혜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기원전 7천년에 벌어진 일이라는 환단고기는 신앙의 영역이지 역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계에서 위서로 규정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 소신을 역사에 강요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며 "사이비 역사를 검증 가능한 역사로 주장할 때 대화는 불가능해진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부대표는 이어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건 백설공주가 실존 인물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환단고기를 학술적 논쟁 대상이 아니라 검증된 역사처럼 다루는 인식이 민주사회 공론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취지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 글에서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사태는 논란이 아닌 것을 의미 있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 혼란을 일으킨 무지와 경박함이 문제"라고 직격했다. 그는 "이 대통령 말대로라면 지구가 구체가 아니라는 지구평평설, 인류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달착륙 음모론 같은 것들도 논란이 있으니 국가 기관이 의미 있게 다뤄져야 하는 것이 된다"고 꼬집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가세했다. 이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환단고기는 위작"이라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말했다. 과학적·사료적 검증이 이뤄진 역사와 허구 서사를 동일선상에 둘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이 대표는 또 다른 글에서 대통령실 해명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환단고기는 문헌 아닌가'라고 발언해 놓고 대통령실은 '분명한 역사관 아래서 역할 해달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는데, 당신들이 날리면을 바이든이라고 들은 것이라 한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실이 해야 할 일은 궁색한 해명이 아니라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는 반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존재하는 만큼, 역사재단 수장에게 분명한 역사관과 대응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은 "이미 위서로 결론 난 사안을 마치 의미 있는 논쟁이 계속되는 것처럼 말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공방이 단순한 발언 논란을 넘어 국가 지도자의 역사 인식과 학문 존중 태도 문제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역사 왜곡과 허위 정보가 확산되는 환경에서 대통령의 언급이 갖는 상징성이 커 여야 대립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는 향후 대정부질문과 상임위원회 회의 등을 통해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인식과 대통령실 해명 과정에 대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여야는 역사관과 공적 발언 책임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