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숫자를 기다린다”…로또 명당 찾는 일상이 된 소확행의 꿈
토요일 밤마다 TV 앞에 앉아 숫자를 세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한 번쯤 사보는 이벤트 같았지만, 지금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소소한 의식이 됐다. 숫자 여섯 개에 담긴 마음은 거창한 일확천금이 아니라 ‘이번 주도 수고했다’는 작은 위로에 가깝다.
제1201회 로또 6/45 추첨에서는 7, 9, 24, 27, 35, 36이 당첨번호로, 37이 보너스 번호로 뽑혔다. 6개 번호를 모두 맞춘 1등은 19명. 각자 14억 1,455만 원의 당첨금을 받게 됐다. 세금을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은 약 9억 4,775만 원. 숫자만 보면 거대한 액수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나도 언젠가는” 하는 조용한 바람이 겹쳐진다.

로또 판매점 앞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퇴근길에 무심코 한 장씩 사는 직장인, 마트 계산을 마친 뒤 작은 용돈처럼 복권을 끼워 넣는 중장년, 여행지 ‘명당’을 일부러 찾아가는 가족 여행객까지, 로또는 세대를 가로질러 주말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SNS에는 “이번 주도 5천 원으로 설렜다”는 인증 사진과 당첨 확인 캡처 화면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이번 회차 2등은 84명으로, 각 5,332만 원씩을 받는다. 3억 원 이하 구간에 해당해 세금을 제하고 나면 실수령액은 약 4,159만 원이다. 3등 3,321명은 134만 원, 4등 166,050명은 5만 원, 5등 2,711,377명은 5천 원씩 받게 됐다.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5등이라도 나왔다”는 안도와 “또 꽝이었다”는 허탈함이 동시에 오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당첨보다도 이 주기적인 기대와 실망 자체를 하나의 놀이처럼 소비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1201회차 로또 복권 총판매금액은 1,153억 8,959만 3,000원. 제1회부터 1201회까지 누적 판매금액은 84조 9,621억 5,445만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총 당첨금액은 42조 4,810억 7,722만 원. 1등 누적 당첨자만 10,030명이다. 평균 1등 당첨금은 20억 1,754만 원, 최고 금액은 407억 2,295만 원이었다.
심리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희망 소비’라고 부른다. 당장 현실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내 삶에 다른 결말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는 셈이라는 해석이다. 거액의 자산 형성보다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이라는 상상을 통해 피로한 일상과 타협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물가와 취업난, 집값 부담을 겪는 세대에게는 작은 지출로 누리는 가장 직관적인 ‘미래 상상’이 된다.
실제로 기자가 주변에 물어보면, 로또를 사는 이유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당첨되면 당장 이직부터 할 거야”라며 웃어넘기는 30대 직장인, “부모님 빚부터 갚고 싶다”고 말하는 취준생, “아이들 결혼자금으로 쓰면 좋겠다”는 중년 부부까지, 거액의 소비 계획보다도 관계와 돌봄, 삶의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누구에게는 통장 잔고 대신, 당첨금으로 채워볼 수 있는 ‘마음속 가계부’가 존재하는 셈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커뮤니티에는 “또 5등이네, 그래도 다음 주에 다시 도전”, “통계 보고 번호 골랐더니 오히려 더 안 맞는 기분” 같은 글이 이어진다. 동행복권에서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추첨된 번호는 34번(204회), 그다음은 12번과 27번(각 203회)이다. 33번, 13번, 17번도 상위권에 올랐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숫자를 꼼꼼히 확인하면서도 정작 구매할 때는 기념일, 집 번호, 휴대전화 뒷자리처럼 자기만의 사연이 담긴 숫자를 적는다. 확률보다 이야기를 택하는 순간이다.
이번 회차 1등 당첨자 19명 가운데 13명은 자동, 6명은 수동으로 번호를 골랐다.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세종, 경기, 충북, 전북, 전남, 경북, 경남 등 전국 각지 판매점에서 1등이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퇴근길에 들른 동네 슈퍼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스터미널 안 작은 매장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명당’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에는 사실, 장소 그 자체보다는 “어디서든 내게도 한 번쯤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은 지급 개시일로부터 1년. 1년 안에 찾지 않은 돈은 다시 세금과 기금으로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밤 추첨이 끝난 뒤, 일요일 오전 로또 판매점과 홈페이지 앞에는 당첨 여부를 확인하려는 발걸음이 몰린다. 주말의 느슨한 리듬 속에 “혹시 나일까” 하는 몇 초의 설렘이 끼어든다.
많은 사람들은 안다. 확률은 냉정하고, 로또만으로 삶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토요일 저녁 텔레비전 속 돌아가는 공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 서는 이유는, 숫자 여섯 개가 주는 상상력이 피곤한 일주일을 버티게 해주기 때문이다. 거창한 행운보다, 오늘도 소소한 희망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숫자를 고르는 손끝에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만이 아니라 ‘조금 더 나답게, 여유 있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함께 얹혀 있다. 어느 토요일 밤, 텔레비전 속 숫자를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도 어쩌면 같은 꿈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